독신 지키며 40년 ‘봉사 외길’…한정인 안양전진상복지관 고문

  • 입력 2006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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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인 한정인 안양전진상복지관 고문(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오랜만에 서울 명동 전진상복지관을 찾아 회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정보 기자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인 한정인 안양전진상복지관 고문(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오랜만에 서울 명동 전진상복지관을 찾아 회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정보 기자
《“남들이 저를 보고 ‘사복(私服) 수녀’라고 하지요.” 한정인(69) 경기 안양전진상복지관 고문은 수녀처럼 독신을 지키며 40년간 봉사활동을 해 온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 가톨릭 평신도 단체인 AFI는 올해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았다. 현재 45명의 AFI 회원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 고문은 AFI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1960년 성균관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평생 봉사의 삶에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1963년 AFI에 입회했다.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해 준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결심했어요. 가톨릭 신자인 부모님은 제가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것에 반대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걱정하시긴 했죠.”

그는 서울 명동 전진상복지관에서 일하다가 1968년 경기 안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해외 가톨릭 단체의 도움을 받아 안양에 근로자 기숙사를 짓게 되자 담당자를 맡게 된 것.

“허허벌판에 기숙사가 들어설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당시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시골에서 보퉁이 하나씩 들고 안양으로 몰려들던 10대 소녀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의지할 데 없이 올라온 이들에게 따뜻한 잠자리나마 마련해 주려고 했던 거죠.”

AFI 내에서도 기숙사 운영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한 고문은 모든 일을 새로 개척해야 했다. 공장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숙사 제공은 물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한글과 꽃꽂이 뜨개질 재봉 등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건 뭐든지 가르쳤다. 그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원에서 재봉 요리 등을 따로 배웠다. 이렇게 갖게 된 자격증만 10여 종에 이른다.

1973년엔 남자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도 세우면서 이곳은 안양 일대 노동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됐다.

“여기서 나간 사람들이 성공했다며 후원금도 놓고 가고 후배들 밥도 사 주고 할 때가 가장 기분 좋았어요. 내가 주례를 서 준 기숙사생도 4명이나 돼요.”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1980년대 초반. 노동자 의식화 단체로 꼽힌 도시산업선교회 사건이 터지면서 그 산하 단체로 오인받아 공안당국의 감시 대상이 됐다.

“특히 기숙사생들을 위험한 노동자로 보고 감시하는 통에 고생했죠. 정부에서 훈장을 받으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해서 궁여지책으로 국민훈장 모란장도 받았어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변화가 일었다.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봉사 대상이 달라졌어요. 기숙사 대신 성폭력과 가정폭력 상담, 외국근로자 상담과 보호 등으로 변화했죠. 이름도 근로복지관에서 전진상복지관으로 바뀌었어요.”

현재 안양전진상복지관은 이주노동자의 집, 경기 여성 긴급전화 1366, 자활의 집, 독거노인을 위한 식사 제공 등 종합복지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974년 2대 관장으로 취임한 그는 1997년 퇴임하고 고문으로 물러나 앉았다. 지금도 글자 모르는 노인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의 몫이다.

그는 2년 전 수녀들과 함께 대북 선교방송인 ‘자유의 소리’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나이에 비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방송에 어울렸던 것.

“정부가 북한을 자극한다며 이 방송을 없앤 게 아쉬워요. 그때의 경험을 살려 앞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녹음 같은 걸 해 보고 싶어요. 40년간 내 뒤에 있는 것은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아직도 할 일은 많아요.”

:AFI는 국제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

1937년 이본 퐁슬레가 벨기에에서 창설한 국제적인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 벨기에 출신 중국 선교사 뱅상 레브 신부가 체계를 잡았다. 레브 신부가 제창한 ‘전(全), 진(眞), 상(常)’은 AFI의 이념이 됐다. 전은 온전한 자아 봉헌을, 진은 참다운 이웃 사랑을, 상은 그리스도적인 기쁨의 전파를 뜻한다. 원래 회원으로 독신을 지키는 여성만 받아들였으나 1973년 남성에게도 문호가 열렸다. 한국에는 1956년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초청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 회원 2명이 들어오면서 여성 계몽 중심의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 국제 본부를 두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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