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때리고 때려라, 웃을 때까지!…TV오락프로 가학성 논란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코멘트
《“여박, 여박, 이것 봐∼ 여박이 크게 남았네. 남은 여박까지 깔끔하게 맞으세요, 유재석 씨.”(박명수) “제가 늘 하는 명언이 있죠. 못 깰 바엔 잡지를 마라!”(유재석) “맞은 데 만지기 없기 아시죠?”(정형돈) 주말 오후 6시 TV의 화두는 ‘때리기’다. 이 시간 일제히 방영되는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서로 게임을 하다 실수를 하면 박으로, ‘뿅망치’로 머리를 때린다. 물론 재미로 주는 벌칙이기는 하다. 그러나 출연자들이 상대에게 벌칙 주기에 혈안이 된 모습은 역력하다. 오락 프로그램의 가학성 논란이 또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 참을 수 없는 벌칙의 가학성?

MBC ‘강력추천 토요일’(토 오후 6시)의 ‘무한도전-퀴즈의 달인’ 코너는 지난해 11월경부터 ‘아하 게임’(앞사람이 말한 단어를 거꾸로 말하는 게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코너의 벌칙은 게임을 하다 틀리는 출연자의 머리에 ‘벌칙맨’이 박을 내리치는 것이다. 여기에 박 파편(일명 ‘여박’)이 생기면 출연진들은 남은 파편으로 벌칙을 받는 사람을 또 한 번 괴롭힌다. 때때로 원한 맺힌 출연자가 생기면 ‘이지메’ 형식으로 한 사람을 골탕 먹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KBS ‘해피 선데이’(일요일 오후 5시 55분)의 ‘여걸 식스’ 코너에 등장하는 ‘쥐를 잡자 게임’(쥐잡기 게임)의 경우 플라스틱 뿅망치가 벌칙 도구다. 그러나 책상 위에 올라가서 망치를 세게 내리치는 장면이나 “그동안 원한 많았다”며 망치를 비껴 내리치는 모습 등은 단순한 게임 벌칙이라 하기엔 다소 폭력적이다.

두 프로그램의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를 지적하는 의견이 꾸준히 게시되고 있다. 시청자 신정헌(28·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씨는 “출연자들이 게임보다는 때리기에 열중하는 것 같아 주말 오후 어린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거북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무한도전’ 코너를 맡고 있는 김태호 PD는 “벌칙자의 머리에 내리치는 박은 사전에 밑 부분을 조금 깨뜨려 사용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고 소리만 나며, 벌 받는 사람이 기분 나빠 하거나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오로지 재미를 위한 설정일 뿐 전혀 가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 ‘때리기’보다 ‘즐거움’이 우선

그러나 게임 코너에서 ‘때리기’가 차지하는 부분은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의 경우 30분 분량에서 출연자들끼리 대화하는 부분을 뺀 실제 게임 시간은 10분 정도. 벌칙 부분도 4∼5분 분량을 차지한다. KBS ‘해피 선데이’의 이훈희 PD는 “벌칙의 강도를 낮춰서 방영할 계획이며 가학성 논란이 없도록 다른 벌칙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일본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경우 가학적인 부분이 하나의 ‘재미’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 정서에는 썩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방송사 간의 지나친 시청률 경쟁과 스타 연예인 위주의 기획 등으로 상대방을 학대하는 ‘사디즘적’ 요소가 오락 프로그램 곳곳에 범람하고 있고 이는 곧 방송사와 출연 연예인의 위신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주말 오후는 모든 세대가 함께 TV를 시청한다는 것을 감안해 단기간 시청률 경쟁에 급급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포맷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