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감정에도 논리 있다… ‘동감의 본질과 형태들’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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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감의 본질과 형태들/막스 셸러 지음·조정옥 옮김/617쪽·2만5000원·아카넷

서양철학의 어원은 ‘지혜에 대한 사랑’에 있다. 지혜는 곧 이성을 의미했고, 이성은 감각 및 본능, 직관과 차별화된 능력이었다. 진정한 인식과 도덕적 판단은 이성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바로 이러한 이성 우위의 전통을 요약한다.

독일의 현상학자인 막스 셸러(1874∼1928)는 여기에 반기를 든 철학자다. 현상학은 한마디로 우리 의식에 포착되는 현상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있어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과학주의와 실재와 현상을 분리하는 관념론을 동시에 넘어서려는 일체의 접근방법을 말한다.

후설에서 시작된 현상학의 전통은 이후 워낙 다종다양하게 전개돼 종합적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 내용 중 하나는 인간의 의식은 노에시스(의식작용)-노에마(의식대상)의 상관관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 말은 자연 역사 예술 종교 등 다양한 사태영역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의식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후설과 동시대인이었던 셸러는 특히 이성과 다른 사태영역으로서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감정에도 그 나름의 논리와 법칙이 있다는 파스칼의 생각을 이어받아 감정의 노에시스-노에마 관계는 이성에 의해 이해되거나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감정적 느낌이 사실 지각보다 앞서서 작용하며 인식의 진정한 근원이자 윤리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동감의 본질과 형태들’은 그 감정들 중에서도 사랑이 윤리의 기초라는 점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윤리의 기초를 감정으로 바라본 서구철학자들은 셸러 말고도 흄, 애덤 스미스, 루소, 쇼펜하우어 등이 있었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과 동감을 선악 판단의 기초로 봤다. 그러나 셸러는 “동감은 타인이 느끼는 그대로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분별없는 감정의 반작용에 불과하다”며 이런 동감윤리학을 비판한다.

그는 동감을 ‘뒤따라 느낌’ ‘감정 전염’ ‘합일적 감정’ ‘진정한 동감’의 네 가지로 분류하면서 “진정한 동감만이 진정한 선을 보장한다”고 설파한다. 진정한 동감이란 타인의 감정 체험에 참여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앞의 세 동감은 수동적인 반면 진정한 동감은 능동적 창조적 가치를 만들어내며 그 징검다리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동정에서 사랑으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에서 동정으로 갈 수는 있다’는 명제는 이를 뚜렷이 보여 준다.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지혜’로 전환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은 어쩌면 이러한 셸러 사상의 각주일지도 모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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