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가수?…10代가수들 노래보다 ‘일상 보여주기’ 선호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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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대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생활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아이돌 그룹이 적지 않다. 위부터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케이블 음악채널 KM ‘슈퍼주니어 쇼’에 출연한 ‘슈퍼주니어’, ‘엠 픽’에 등장한 ‘올 블랙’,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깨워줘서 고마워’ 코너에 출연한 ‘SS501’.
노래 대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생활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아이돌 그룹이 적지 않다. 위부터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케이블 음악채널 KM ‘슈퍼주니어 쇼’에 출연한 ‘슈퍼주니어’, ‘엠 픽’에 등장한 ‘올 블랙’,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깨워줘서 고마워’ 코너에 출연한 ‘SS501’.
최근 10대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5인조 남성 그룹 ‘SS501’이 TV 화면 속에서 비몽사몽이다. 이 중 멤버 김현중(20)이 클로즈업된다. 카메라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그를 이리저리 비춘다. 화면이 바뀌고 또 다른 멤버 박정민(19)이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을 구석으로 치운다. 한쪽에서는 진행자 박경림이 이들의 모습을 폐쇄회로(CC)TV로 관찰하며 실제 상황임을 알린다. 이는 14일 방영된 MBC ‘강력추천 토요일’(오후 6시)의 ‘깨워줘서 고마워’ 코너의 한 장면이다.

○‘무대’보다 ‘일상’을 보여 주는 스타들

이 코너는 ‘SS501’ 멤버가 아침잠에서 깨는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형식의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들을 깨우는 방법을 제시하는 글만 2000건이 넘는다. 이들을 ‘에스에스 501’로 부를지, ‘더블에스 501’로 읽을지조차 몰랐던 30, 40대도 이제는 멤버들의 얼굴을 알 정도로 인지도가 상승했다. 하지만 이 코너를 즐겨 보는 회사원 이정훈(34) 씨는 “멤버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정작 이들의 노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수=노래’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이제는 노래보다 가수의 사생활, TV 속 이미지를 먼저 접하는 시대다.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가수의 일상을 공개해 사전 인지도를 높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아이돌 그룹’에 두드러진다.

케이블 음악 채널 Mnet과 KM의 ‘엠 픽’에서는 2월에 데뷔 음반을 발표하는 10대 힙합 듀오 ‘올 블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데뷔 전 신인들의 일상과 활동 과정을 보여 주는 이 프로그램은 안무 연습부터 식사, 심지어 멤버들이 다투는 장면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는다.

13인조 10대 여성 그룹 ‘아이 서틴’이나 SM엔터테인먼트 출신의 12인조 그룹 ‘슈퍼주니어’ 역시 활동상은 비슷하다. 두 그룹의 소속사는 “멤버들이 연기, MC, 개그 등 엔터테이너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며 “그룹 활동은 스타가 되는 등용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이 서틴’의 ‘원 모어 타임’이나 ‘슈퍼주니어’의 ‘트윈스’ 등 이들이 발표한 노래를 아는 것은 또래 팬 정도다.

○참을 수 없는 음악의 액세서리화(化)?

가수는 아는데 노래를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뷔한 지 15년 된 한 가수는 “몇몇 후배의 경우 가수 활동을 엔터테이너가 되는 징검다리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 평론가들은 △전반적인 음악 산업의 침체 △음악 실력보다 그룹의 대형화, 다양한 ‘캐릭터’로 승부 △쇼,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지도를 높이는 가수가 곧 인기 가수로 인식되는 현상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문화연대 이동연(41) 문화사회연구소장은 “과거 ‘H.O.T’나 ‘S.E.S’ ‘핑클’만 하더라도 이들의 대표곡을 10대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알 만큼 음악으로도 접근했다”며 “현재는 가수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한 10대 스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신인가수 등용문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경우 출연자들의 일상을 공개하지만 노래 연습이나 심사위원의 평가 등 ‘노래’가 중심이다. 이 대회 출신인 켈리 클라크슨, 루벤 스투더드 등이 가수 데뷔 후 ‘아이돌 스타’ 딱지를 뗄 수 있었던 것도 탄탄한 ‘노래 실력’ 덕분이었다.

음악 평론가 성우진 씨는 “그룹 멤버 중 한 명이라도 MC나 탤런트로 뜨기를 바라는 연예 기획사가 많다”며 “가수를 키우기보다 상품을 키우는 매니지먼트 시스템, 10대가 선호하는 가수에 치중하는 TV 연예 오락 프로그램 등의 제작관행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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