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리스문명 진짜 주인은 이집트인…‘블랙 아테나Ⅰ’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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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테나Ⅰ/마틴 버넬 지음·오흥식 옮김/880쪽·3만 원·소나무

출간 후 19년 만에 한국에 도착한 ‘블랙 아테나’는 서구 지성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검은 아테나 여신’이란 뜻의 제목부터 매우 선정적이다. 그리스신화의 지혜의 여신이며 서구문명의 상징인 아테네 여신의 기원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 이집트 여신(네이트 여신)이라는 뜻이다.

사실 동양인들의 평균적 이해로는 그리스·로마 문명이 그보다 선행한 이집트 문명의 영향으로 형성됐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런 문명의 전수 수준을 뛰어넘는다.

고대 그리스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식민지로 건설됐으며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리스신화의 신들뿐 아니라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들조차 이집트계 혈통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리스 문명이 아프리카계 이집트인 또는 셈족인 페니키아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와 이집트·페니키아의 관계는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그 식민모국이었던 영국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리스 문명의 이런 아프리카·중동 기원설이 1820년대 이후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득세와 실증사학을 내세운 서구학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날조됐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리스 문명이 아리안족의 독자적 문명으로 재탄생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음모이론의 하나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촘촘한 이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틴 버넬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명예교수로 있는 정통학자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고대 이집트어, 페니키아어, 미케네어, 그리스어를 공부해 통달한 그는 400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집적된 각종 역사학,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자료를 총동원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들에 의해 다스려졌다는 1차 문헌은 바로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책들이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를 세운 카드모스가 페니키아인이라고 적고 있다.

또 저자는 고대 그리스어의 4분의 1은 이집트어, 4분의 1은 고대 셈족 언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한편 미케네와 그리스에서 최신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통해 그리스 문명의 독자성 신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체 4권 기획의 첫 권인 이 책은 ‘날조된 고대 그리스(1785∼1985)’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근대 서구학자들의 역사 왜곡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출간 이후 서구학계의 반발을 예상해 후속 책들을 그 반론 형식으로 펼치려는 의도에서다. 실제 1991년 출간된 2권은 문헌학과 고고학적 증거를 담았고, 올해 출간될 3권에는 그리스 고대 지명의 기원, 4권에는 그리스 신화 속 신과 영웅들 이름의 기원을 다룰 계획이란다.

저자는 신화를 신화로만 읽지 말고 역사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군신화를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읽어야 한다는 한국 재야학계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과연 이 책의 저자만큼 깊고 넓게 연구한 학자가 있었던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저자의 학문적 열정만큼은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원제 ‘Black Athena’(198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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