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쉬지 않는 자라가 천 리 간다

  • 입력 2006년 1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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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별천리(跛鼈千里)’란 말이 새해 벽두에 떠올랐다. ‘반보로 가도 쉬지 않는 자라가 천리를 가고 흙 쌓기를 쉬지 않으면 언덕과 산을 이룬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파별이란 완전하지 않은 자라다. 완전하지 않으니 절름발이를 뜻한다. 절름발이니 그나마 걸음도 자라 걸음으로 한 보가 되지 않고 반 보다. 그 절름발이가 어떻게 천리를 가겠는가.

발이 온전하다 해도 자라 걸음으로 천리가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천리를 간단다….

어릴 때 배운 교과서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다. 이 교훈은 인간 세상에서 항상 유효한 것 같다. 재주를 가지고서 교만하지 않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그 재주에 팔리다 보면 목적도 희미해지고 만다. 토끼는 스스로의 빠름을 믿고 한 방에 내달리는 호기를 부린다. 그러나 거북에게 속도는 무의미하다. 그냥 가는 만큼 가는 것이다. 어쩌면 갈 수 있어서 행복한지도 모른다. 거북의 머리에는 토끼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토끼의 한 걸음은 빠름에 묻혀 가볍게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거북의 힘든 한 걸음은 그래서 소중하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면 그 약점이 오히려 약이 된다. 걷는 약점을 잘 아는 자라는 그래서 쉴 수가 없다.

인간의 오랜 역사를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이겨내고 큰 성취를 보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좋은 환경에 함몰되어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사장시켜 버리고 마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출발선상의 환경에 너무 마음 쓰지 말자. 한 걸음이건, 반 걸음이건 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은가. 그 기쁨은 언덕이 되고 산이 된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도 순간순간, 하나하나 쌓여야 인생의 언덕이고 산이다. 병술년 한 해는 스스로의 부족함이 도리어 강점이 되게 하자.

보경 스님 서울 법련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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