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택]유학간 아들에게 쓴 편지

  • 입력 2005년 1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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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8월 29일자 ‘울고 싶은 남자들-가정의 외딴 섬, 가장(家長)’을 시작으로 12월 21∼23일자 ‘세밑 기획-가족의 품으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기획을 통해 가족을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가꿔 가고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연을 전해 왔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마치며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金龍澤·57) 씨의 특별 기고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 시인이 지난해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민세야, 잘 지내느냐.

겨울이 깊어 가는구나. 네가 있는 그곳은 늘 여름이어서 네가 좋아하는 흰 눈을 보지 못하겠구나.

민세야, 어제 네 전화 목소리가 좀 무겁더구나. 네 목소리가 조금만 달라도 나는 가슴이 덜컥한다. 잠을 자다가도 네가 그 먼 타국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눈이 번쩍 떠지고 벌떡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리며 거리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너를 생각한다. 잠은 잘 자는지, 먹을 것은 잘 먹는지, 문화가 다른 그곳에서 학교 친구들과는 잘 어울려 지내는지, 같이 지내는 집 식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답답할 때가 많아 잠자리를 뒤척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민세야, 어제는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저녁에 꿈을 꾸셨는데, 할머니 꿈에 내가 두드러기가 어찌나 많이 났던지, 새벽에 깨셔서 잠을 자지도 못하고 계시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전화를 하셨단다. 할머니는 늘 그렇게 당신 꿈자리를 가지고 우리 식구들의 하루를, 안부를, 안위를 점치고 염려하신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참 가난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분가할 때 큰집에서 살림살이 하나 받을 수가 없었단다. 빈손으로 분가하여 집을 짓고, 땅을 사고, 자식들을 낳아 길러 우리들을 이만큼 키워 오신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전쟁이 끝나 피란길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작은아버지를 낳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산에서 소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베어 모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지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4남 2녀 우리 형제자매를 그 집에서 키웠다. 내가 중학교 가고, 작은아버지가 중학교를 순창으로 가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헤어져 살았다. 지독하게 가난한 학교생활이었다. 우리 모두 6년씩 밥과 김치만 먹고 학교를 다녔다.

순창에서 집에 갈 차비가 없어서 토요일이면 12km가 넘는 비포장도로를 걸어갔다. 일주일이 어찌 그리 길던지, 금요일 밤이 왜 그렇게 길던지 토요일 오전 수업은 늘 허둥지둥이었다. 집에 가고 싶었던 거지. 집에 가 봐야 순창 갈 차비나 학교에 낼 돈이 없어 할머니가 이웃마을까지 가서 돈을 빌려야 했지만, 그래도 집에는 가고 싶었지. 이따금 네가 미국에서 전화를 할 때 나는 가라앉은 네 목소리를 들으며 눈시울이 더워져 오곤 한단다. 옛날 순창에서 집으로 오고 싶어 눈물이 나던 때를 떠올리며 말이야.

세월이 갔다.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객지로 간 사람은 용구 작은아버지였다. 서울로 간 것이지. 추석과 설이 되면 작은아버지는 집에 오곤 했다. 작은아버지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동구 길을 들어서서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 가족이 보인 그 기뻐하던 얼굴과 몸짓들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단다. 객지에서 돌아온 작은아버지와 우리들이 같이 앉아 있을 때의 그 화기애애함과 기쁨을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 비교하겠니.

그렇게 지내다가 작은아버지가 장가를 갔지. 우리 가족이 한 사람 불어났다. 그 또한 기쁨이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남의 집 사람이 들어와 우리 집 가족이 된 것이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단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살다가 영원한 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과 슬픔은 할머니에게는 물론 우리에게도 오래오래 계속되었단다. 지금도 한 마을에 태어나 살며 저 험난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농사를 지으며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일생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눈앞이 흐려 온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얼마 있다가 나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 네 엄마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지. 엄마는 시골에 와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할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잘 배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딸과 어머니처럼 자기들을 잘 지키고 가꾸었단다. 민세야,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복은 네 엄마와 할머니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그 두 사람은 알고 있는 것 같았지. 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연이 되어 한 가족이 되었으니 잘살자고. 이렇게 만났으니, 기왕이면 잘살자는 게 할머니와 네 어머니의 생활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상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니?

네가 태어나기 전에 큰고모가 대전으로 시집을 갔다. 얼마 전 큰고모가 크게 아파 우리 가족 모두 슬픔과 걱정으로 많은 날을 보냈음을 너도 알 것이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의 불행은 우리 모든 가족의 뿌리를 흔들어 놓는다.

민세야,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이었다. 한 가족이 한 이불 밑에서 살들을 비비며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고 살다가 장성하여 뿔뿔이 흩어져 살며 자기들이 또 한 가족을 이루어 가며 사는 이 과정 속에 그 얼마나 많은 가족의 아픔과 괴로움과 그리고 웃고 울던 행복과 슬픔들이 켜켜이 쌓여 있겠니. 그 어느 가족이든 그 세월들을 들춰 보고 뒤적여 보면 그 얼마나 많은 사연이 그 속에 소용돌이를 치고 있겠니. 다들 그렇게 흩어져 살며 또 일가를 이루어 가며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사연들을 쌓아 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우리의 소박한 역사인지도 모른다.

네가 태어나고, 또 동생이 태어났다. 너희들이 태어나자 할머니는 자기가 살아온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다 털어내 버린 듯 너희들을 보듬고 살았다. 그렇게 우리는 시골에서 살았다. 할머니 어머니, 너와 동생 이렇게 시골에서 산 세월은 영화 같았지. 내가 학교에서 퇴근하면 엄마는 네 손을 잡고 동생을 업고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를 기다렸다. 너는 풀꽃을 꺾어 들고 장난을 하다가, 내가 달려가면 너는 내게 달려왔지.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민세야, 네가 고등학교를 담양으로 갔지. 우린 또 헤어져 살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게 너는 집으로 전화를 하고, 주말이면 옛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너는 차를 타고 달려왔지. 네가 못 오면 나와 엄마가 달려갔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네 모습을 보며 나는 ‘저것이 저렇게 우리를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단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너는 이제 더 멀리 떨어져 산다. 가족이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아닌데 해도, 그래도 민세야, 우리가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산다고 해도 우리는 흔들릴 수 없는, 부를수록 가슴이 뜨거워져 오는 것이 가족이다. 가족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의 처음이고 그 끝이고, 어떤 경우에도 마지막까지 버텨야 하는 희망이다. 너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고, 사람이 잘살면 얼마나 잘산다고 아이들을 이렇게 멀리 떼어놓고, 보고 싶을 때 못 보고 먹이고 싶은 것 못 먹이고 산답니까. 못살아도 좋아요. 나는 민세를 내 곁에 두고 살랍니다.”

이게 네 엄마의 말이다. 민세야, 나도 그렇다. 엄마와 나는 꼭 너와 같이 살고 싶단다. 이게 내 간절한 소망이다.

너를 그 먼 곳으로 보내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며 나는 속으로 외쳤다. “민세야! 가지 말고 비행기에서 내려 그냥 집으로 와!” 하고 말이야. 머나먼 객지에서 마음고생이 심할 줄 안다. 머지않아 우리 가족이 다 만나 옛이야기로 웃으며 같이 살 날이 꼭 올 것이다.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

2005년 12월 23일 민세가 태어난 마을에서 아버지가 썼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68년 순창농림고등학교 졸업

△1970년∼ 임실군 내 초등학교 교사(현재 덕치초등학교)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시집 작품 발표로 문단 데뷔

△주요 상훈: 김수영문학상(1986년), 소월시문학상(1997년), 제11회 소충 사선문화상(2002년)

△주요 저서: 섬진강(1985년), 맑은 날(1986년),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년), 섬진강 이야기(1999년), 시가 내게로 왔다(2001,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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