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품으로]<中>사랑이 있어 외롭지 않아요

  • 입력 2005년 12월 2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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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친구 같은 父女예요”“아빠, 오늘 오전 수업인데 점심 사 주세요!” 학기말이어서 수업이 일찍 끝난 딸이 모처럼 시내에 나왔다. 20일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청계천 길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장경근 씨와 둘째 딸 미솔 양 부녀의 정경이 한없이 포근해 보인다. 장 씨는 ‘딸사랑아버지모임’의 공동대표까지 맡을 정도로 딸들과의 사이가 각별하다. 김미옥 기자
“우린 친구 같은 父女예요”
“아빠, 오늘 오전 수업인데 점심 사 주세요!” 학기말이어서 수업이 일찍 끝난 딸이 모처럼 시내에 나왔다. 20일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청계천 길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장경근 씨와 둘째 딸 미솔 양 부녀의 정경이 한없이 포근해 보인다. 장 씨는 ‘딸사랑아버지모임’의 공동대표까지 맡을 정도로 딸들과의 사이가 각별하다. 김미옥 기자
‘아빠는 잘 해내실 거라 믿어요. 아빠 파이팅!’

장경근(51·영애드컴 미디어총괄본부장) 씨는 회사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출근길에 딸들이 코트 주머니에 넣어 준 쪽지를 펴 보며 힘을 얻는다. 장 씨는 아침에 일부러 일찍 출근하면서 딸들의 학교 앞까지 함께 걸어간다. 일요일에 교회에 갈 때도 함께 걸어간다. 차를 타면 10여 분밖에 안 걸리지만 일부러 40여 분간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장 씨에게 대학생, 중학생인 두 딸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후원자다. 10년 전 사업 실패에 이은 이혼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장 씨와 딸들은 어느 집도 부럽지 않은 화목하고 탄탄한 가정을 꾸려 오고 있다. 부녀 간의 꾸준한 대화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는 노력이 ‘엄마의 빈 공간’을 메워 준 것이다.

“누구든지 우리 딸이나 저를 보면 한 부모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절대 못해요. 딸들을 정말 구김 없이 잘 키웠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요.”

세상살이에 지칠 때 장 씨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것도 딸들의 성원이다.

“직장 생활과 집안일에서 겪는 고민을 딸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능히 할 수 있는 분이다. 우리 아빠는 그런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그런 편지를 보내 줘요. 남자 친구 사귀는 문제, 아르바이트 문제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아빠한테 친구처럼 털어놓아요. 그럴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장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흔히들 ‘화목한 가정’이라고 하면 부부와 그들이 낳은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모든 가정이 그런 외형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혼, 재혼, 입양 등이 많아지면서 가족의 형태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다양화 추세 속에서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 솟아나는 근원은 가족이 어떻게 구성돼 있느냐는 외피가 아니라 구성원 간의 사랑과 대화라는 점이다.

‘어머니, 점심 사 드릴게요. 나오세요.’

박미영(가명·45) 씨는 얼마 전 회사에 다니는 큰아들에게 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생각할 때마다 봄꽃 같은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1991년 남편과 사별한 박 씨는 2년 뒤 아들 둘을 둔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하지만 ‘새 엄마’ 역할은 쉽지 않았다. 아들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방황했다. 그럴 때마다 박 씨는 눈물로 설득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던 중 큰아들이 군에 입대했고 뜻밖의 편지가 날아왔다.

‘어머니,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가족이 너무 그립고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동안 제가 무심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고 조금만 참아 주세요. 어머니는 저에게 꼭 필요한 분입니다.’

“그때 아들이 보내온 편지가 힘과 용기를 줬어요. ‘고난에 져서 울지 말고 반드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환하게 웃으리라’ 다짐했지요.”

둘째도 마음을 잡고 취직을 했다.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지만 박 씨의 가정은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화목한 가정으로 꼽힌다.

“가정이란 노력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는 보금자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아들들이 방황할 때 지쳐 포기해 버렸더라면 아마 오늘같이 행복한 날은 없었겠지요.”

입양 가정에서 들려오는 훈훈한 이야기들도 ‘혈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저는 가슴으로 두 아들을 낳았어요.”

정재숙(가명·54) 씨는 두 딸을 낳은 뒤 1995년에 큰아들(현재 10세), 2000년에 둘째 아들(7)을 입양했다. 젊은 시절부터 입양 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그는 입양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완전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세상은 정 씨 모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다른 애들한테는 ‘아유, 애가 많이 컸네’ 그러면서 우리 아이한테는 ‘데려온 애가 이렇게 컸어?’라고 묻더라고요.”

정 씨는 어느 날 식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려줬다. 둘째 아들은 깜짝 놀라며 “누나 엄마와 형 엄마, 내 엄마가 다 다르겠네”라고 물었다. 정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꼭 낳은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아니야. 엄마가 아빠를 낳지 않았는데 같이 살잖아? 가족은 같이 사랑하며 사는 게 중요하지 배 아파서 낳은 건 중요한 것이 아니야.”

그러자 아이는 “엄마, 내 엄마는 우리 엄마 하나뿐이야”라며 정 씨를 꼭 끌어안았다.

그 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녁을 먹을 때면 식사 예절이 걱정될 만큼 여섯 식구가 모두 수다쟁이가 되는 그런 시간들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큰아들 학교 공개수업에 갔더니 담임교사가 “○○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예요.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 씨는 “가족은 혈연보다는 관계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장혜경(張惠敬) 한국여성개발원 가족보건복지연구부장은 “‘평범한’ 가족 형태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며 상처를 받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며 “그런 편견은 가족의 본질이 혈연이나 외피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조건 없는 헌신임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다”고 지적했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禹鍾敏) 교수는 “비록 과거의 대가족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타산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관계, 즉 조건 없는 사랑이나 보살핌이 이뤄진다면 그곳이 바로 진정한 가정”이라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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