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송영만]‘獨도서전’ 유럽에 한국문화 흐르게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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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앞 벤치에 앉았다. 옷소매를 파고드는 한기가 녹록지 않다. 18일이면 한국이 ‘주빈국’인 올해 도서전이 시작된다 생각하니 지난 3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2002년 도서전 개막일 오후에 조직위원회의 폴커 노이만 위원장과 홀거 예링 부위원장을 만나 주빈국 의향을 전하던 일, 2005년 행사의 주빈국으로 선정되고 나름대로 힘을 다해 행사를 준비하던 일, 그 과정에서 주빈국조직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뀌면서 겪은 우여곡절 등 온갖 상념이 오버랩된다.

18일 오후 5시 국제대회의장에서는 문화계 인사 대표로 고은(高銀) 시인이 축사를 하게 된다. 저녁에는 주빈국 행사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갈라콘서트가 알테 오퍼 프랑크푸르트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개막 공연은 ‘책을 위한 진연(進宴)’. 조선시대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 문화 르네상스를 이룬 정조가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마련한 직후, 때마침 탈고된 ‘한중록(閑中錄)’의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내용이다. 한중록이 없었다면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그 절절한 사연을 후세인이 어찌 이해할까. 기록의 중요성에 경의를 표하는 공연이다. 지난주 서울의 국립국악원에서 리허설을 보았다. 시종 절제된 긴장이 돋보인 완성도 높은 수작. 한국 문화의 주요한 특질인 곡선과 느림, 그리고 그윽함이 기저에 깔려 있는 수제천(壽齊天)은 유럽인들에게 문화충격이 될 것이다.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자부심과 위엄이 깃든 연화대무(蓮花臺舞)와 선유락(船遊樂), 각종 군무(群舞)의 장려함에 서구인들도 한껏 취하길 빈다.

상념은 이내 기쁜 마음으로 치환된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유럽의 심장부에서 어깨를 펴고 걸어왔을까. 40여 년 전 눈물을 흘리며 고국땅을 떠났던 파독 간호사와 광원들은 이제 초로에 접어들었다. 그들 앞에 2000여 명의 출판 문화 예술인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작년 프랑크푸르트 북부 외곽의 타우누스젠트룸호텔에서 경험한 일이 떠오른다. 호텔 로비에 놓여 있는 한국산 액정표시장치(LCD) TV가 나를 가슴 뿌듯하게 했다. 그러나 그 자긍심은 복도를 지나 객실에 들어서면서 금세 잦아들었다. 거기 걸린 그림의 상당수가 19세기 우키요에(浮世繪)풍의 일본 풍속화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뷔페에서도 일식은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반면 서구인들의 뇌리에 한국은 자동차, 전자제품 등 공산품을 잘 만들고 정보기술(IT)에 특별한 자질을 가진 나라로 각인돼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이미지를 달리 만든 것에 일본이 1990년 도서전을 주빈국으로 멋지게 치른 것도 주요인이라 했다.

이제 유럽에서 한국 이야기가 오가고, 한국 문화의 아우라가 어른거리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번에 한국은 185억 원의 예산으로 총 29개의 문화 프로젝트를 마련해 프랑크푸르트 전역의 각종 전시장 및 공연장을 파고들고 있다. 주제는 ‘대화와 스밈’.

마침 올해는 독일 정부가 정한 ‘한국의 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불기 시작한 한국 문화의 바람이 독일과 유럽 곳곳에서 소용돌이치길 기대해 본다. 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잘 치른 후 노벨 문학상이 그 나라에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그랬고,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스도 그러했다. 내 기대가 지나친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말이 있다. “아시아 무대에서 족하지 않고 서구세계로 나아간다”는 새로운 의미로 이 말을 써보면 어떨까. <프랑크푸르트에서>

송영만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관 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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