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이’만 있는 가정 ‘싱글맘’<中>新 빈곤층의 그늘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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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가정폭력을 일삼은 남편과 이혼한 후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살고 있는 전모(33·서울 종로구) 씨는 통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월 80만 원 남짓한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 월세로 30만 원을 내면 남는 돈은 50만 원. 이 돈으로 식비, 교통비를 쓰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5만 원이 채 못 된다. 아이들과 주말이면 영화라도 함께 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지갑이 너무 얇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물론 일부 이혼녀나 남편과 사별한 여자의 경우 위자료와 유산 등으로 예전 못지않게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그 비율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경제적 문제로 상당수의 싱글 맘들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서히 졸아드는 살림=본보가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심층조사에 따르면 싱글 맘들은 현재 겪는 어려움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경제적 빈곤(72.9%)을 들었다.

특히 이혼 후 남편이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거나, 사별한 남편이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진 싱글 맘들의 경제적 고통은 더욱 커진다.

이혼 전에 여유 있는 생활을 했던 싱글 맘들도 의사 약사 변호사 교사 동시통역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거나 남편에게서 양육비 지원을 받지 않으면 3년 내에 ‘바닥 생활’을 하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부도로 남편이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돼 위자료도 받지 못하고 이혼한 정모(36·서울 중랑구) 씨는 점차 생활이 하향화돼 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처음에는 원룸으로 시작했지만 월세가 점차 오르자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했다.

중학생인 큰아들은 교통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며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닌다. 문화활동비나 조금 좋은 옷을 산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혼 당시 수중에 조금 있던 돈도 집 얻고, 생활비로 쓰다 보니 1년도 안 돼 다 없어졌다”며 “얼마 안 가 ‘거지’되는 게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 ‘생활비 등이 모자라 돈을 꾼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60%가 빌린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한 달에 한 번 빌린다’는 응답이 30.5%로 가장 많았고, ‘6개월에 한 번’이 23.8%, ‘일주일에 한 번’도 5.7%를 차지했다.

▽학원·과외는 엄두도 못내=엄마, 다섯 살짜리 남동생과 함께 사는 소민(가명·12·서울 구로구)이는 방과 후면 곧장 집으로 온다. 봉제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남동생을 돌보기 위해서다.

방과 후 끼리끼리 인근의 학원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들지만 엄마에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소민이의 엄마 신모(37) 씨는 “아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 학원에 다녔으나 몇 달째 수업료가 밀리자 본인이 그만두겠다고 하더라”며 “꿋꿋하게 견뎌내는 딸아이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겠다”며 씩 웃었다.

최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방과 후 교실이나 인근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자원봉사 등을 활용하는 싱글 맘들도 있지만 이마저도 가까운 곳에 없어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조사 결과 ‘학원에 다니게 하거나 과외를 시킨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시킨 적이 없다는 응답이 67.6%로 ‘그렇다’는 응답 32.3%의 배가 넘었다.

▽병원조차 외면하는 싱글 맘=한때 간병인으로 일했던 유모(45·서울 금천구) 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병원 원무과에 ‘이 사람들은 진료나 입원의뢰를 받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을 봤다.

그 종이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포함해 평소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저소득 싱글 맘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

유 씨는 “제때 치료비를 내지 못하는 저소득 싱글 맘이 많아 병원에서 그런 것 같다”며 “같은 싱글 맘으로서 안타까우면서도 병원 측에 내심 섭섭했다”고 말했다.

주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싱글 맘들의 경우 디스크를 비롯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조사 결과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싱글 맘이라고 병원에서 무시당한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30.8%가 ‘그렇다’고 답했고,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비율이 38.1%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희망이’=이혼 6년차에 중2 딸아이를 두고 있는 추모(42) 씨는 최근 같은 처지에 있는 직장 동료 및 거래처 고객들과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 아이 교육, 전세금 등 실생활 정보교환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사회적 소외감 극복이 가장 큰 동기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 금융상품 소개 등 재테크 노하우 공유는 모임이 주는 커다란 이점 중 하나다.

이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빚… 빚…빚… 싱글 맘의 딜레마

적은 수입은 싱글 맘들의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그러나 이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드는 것은 개인적으로 안고 있는 빚이다.

본보 조사에 따르면 싱글 맘들의 평균 수입은 월 72만 원에 부채는 평균 1500만 원. 저축은 월 10만 원을 하고 있다.

이자를 따지지 않고 단순 계산만 해도 이들이 빚을 갚으려면 150개월(12년 6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이론적인 계산일 뿐이다.

고교생 딸 하나를 둔 이모(44) 씨는 카드 빚과 주변에 빌린 돈을 포함해 90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신용불량자이기 때문에 웬만한 직장은 다니지도 못하는 이 씨는 대리운전을 하며 월 50여만 원을 벌고 있다.

수입은 고스란히 관리비, 식비 등 생활비로 나간다. 딸의 교육비는 친지들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있다. 방과 부엌, 화장실이 각각 한 개씩 있는 원룸에서 살고 있지만 이 또한 다른 사람의 집. 이 씨가 빚을 갚으려면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180개월(15년)을 모아야 한다.

이 씨는 “원래 빚이 있는 데다 살면서 생활비가 모자라 또 빚을 져야 한다”며 “빚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0만 원의 빚을 진 한모(35) 씨의 월수입은 120만 원. 월 20만 원을 저축하고 있지만 빚을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들어갈 아들 교육비를 위한 것이다.

한 씨는 “빚을 안 갚아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의 미래와 바꾸고 싶지는 않다”며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 황은숙 소장은 “저소득 싱글 맘의 대부분이 혼자 되기 전 남편이 진 빚을 떠안고 살고 있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 신용불량자가 돼 숨거나 친지, 친구들도 못 만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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