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佛 앙리4세의 여인 죽음 뒤에는…‘퍼플 라인’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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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작자 미상의 그림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 오른쪽이 데스트레고 그 옆 여인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다. 붉은 옷을 입고 멀리 앉아 있는 여인은 운명의 실을 짜고 있는 여신으로 해석된다. 사진 제공 휴먼&북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작자 미상의 그림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 오른쪽이 데스트레고 그 옆 여인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다. 붉은 옷을 입고 멀리 앉아 있는 여인은 운명의 실을 짜고 있는 여신으로 해석된다. 사진 제공 휴먼&북스
◇퍼플 라인/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김청환 옮김/전2권 각권 320쪽 안팎·각권 9000원·휴먼&북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 그림을 소재로 한 역사 추리 소설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는가. 알려진 대로 미국 작가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이곳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파고드는 이야기다.

독일 작가인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가 2002년에 내놓은 ‘퍼플 라인’ 역시 루브르에 걸린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라는 작자 미상의 그림에서 시작된다. 16세기 후반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정부였던 데스트레와 다른 한 여인이 나체로 욕조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 데스트레는 반지 하나를 곧 떨어뜨릴 것처럼 쥐고 있고, 다른 여인은 데스트레의 젖꼭지를 살짝 잡고 있다.

앙리 4세는 프랑스의 신교와 구교 갈등을 종식시키고 절대 왕조인 부르봉 왕조의 문을 연 왕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던 여성을 상대로 누가 왜 이런 불경스러운 장면을 그렸을까. 게다가 데스트레는 앙리 4세와 결혼해 왕비가 될 날을 일주일 남겨두고 까닭 모를 죽음을 맞이한다. 앙리 4세의 아들을 낳은 뒤 또다시 임신 6개월째였던 스물여섯 살의 미녀를 누가 죽였을까.

소설 속에서 문학 강사인 안드레아 미켈레스가 고문헌의 세계로 뛰어들어 이 같은 의문들을 뒤쫓는데 그는 바로 작가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작가 자신은 1986년에 이 그림을 처음 본 뒤 강한 자극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책에는 그가 파악한 데스트레를 그린 다른 그림이 여럿 제시된다. 데스트레 홀로 욕조에 있는 그림, 이미 나와 있는 그림 속의 여인 얼굴을 데스트레로 바꿔서 다시 그린 모작 등이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데스트레는 윗몸을 노출하고 있는데 이 소설이 호기심을 끈다면 아마 이런 점도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빈치 코드’가 살인 사건에서 비롯된 쫓고 쫓기는 이야기의 선로 위를 기차처럼 달려나가는 데 반해 이 소설은 16세기와 19세기, 그리고 현재라는 세 가지 시점(時點)을 오가면서 긴장이 끊기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원래 문예비평가로 출발한 작가가 쌓아놓은 16세기 프랑스와 유럽의 정세, 궁정의 풍습 등 인문학적인 정보들이 읽는 맛을 더해주는 소설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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