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춤은 싫다…따라하는 90년대 춤 탈피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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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인터넷에 온 몸을 떨며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퍼지면서 유명해진 '떨녀' 이보람 씨. 연합
올해 4월 인터넷에 온 몸을 떨며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퍼지면서 유명해진 '떨녀' 이보람 씨. 연합
홍보 대행사에 근무하는 여성 직장인 최진아(26) 씨. 고교 때부터 나이트클럽과 록카페 등 무도회장을 찾아다닌 춤 애호가다. 그녀에게 ‘나이트클럽 문화’에 대해 묻자 ‘격세지감’이란 단어로 답변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나이트를 가려면 며칠 전부터 ‘듀스’, ‘클론’, ‘H.O.T’ 등 인기 가수들의 춤을 집에서 연습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친구들이 끼워 주질 않았거든요. 다 가수들처럼 똑같이 추는데 혼자 못 추면 창피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가수들하고 똑같이 추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자신의 개성대로 추죠. 막춤부터 부비부비 춤까지 다양하답니다.”

12일 오전 2시. 서울 강남역 부근의 A나이트. 가수 세븐의 ‘열정’, 미나의 ‘전화받아’에 맞춰 춤을 추는 50여 명의 선남선녀는 제각각이었다. 막춤으로 땀에 흠뻑 젖은 정장 차림의 직장인, 섹시한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허리를 돌리는 여성, 시종일관 손가락으로 하늘 찌르기를 하는 사람…. 가수들과 똑같이 추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춤 못 추는데 어쩌지…” 하는 걱정과 ‘제2의 듀스’ ‘제2의 이효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제 그들에게 없다. 플로어에는 ‘개성’만이 존재한다.

○ 생산과 소비 주체가 일치… 춤 평등시대

몸을 부르르 떠는 춤을 춰 ‘떨녀’라는 별칭을 얻은 대학생 이보람(22) 씨는 인터넷에 자신의 춤추는 모습이 공개된 후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한 40대 여성은 “‘떨녀’와 한판 붙고 싶다”며 자신의 춤추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떨녀’의 등장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대중이 춤을 생산하고 동시에 소비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SBS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뚜루뚜루뚜 따다다∼’ 노래에 맞춰 코믹댄스를 선보인 개그맨 정만호(29)의 경우도 과거 가수나 전문 댄서로부터 대중에게 수직적으로 춤이 전파된 구조에서 탈피해 수평적 구조로의 전환을 보여 준 사례다. 정만호는 “2년 전 침 뱉는 시늉에 착안해 ‘만사마’ 춤을 만들었다”며 “인터넷을 비롯한 쌍방향 매체의 발달로 일반인도 연예인 못지않게 춤으로 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보는 춤? 이젠 추는 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회오리 춤을 시작으로 댄스 가수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춤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대중은 가수들의 춤을 보며 따라 하는 이른바 ‘보는 춤’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춤을 개발하는 ‘추는 춤’으로의 변화를 일으켰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이기스’ 댄스 아카데미에서는 예전엔 특정 가수의 비디오를 보고 춤을 연습하도록 지도했으나 최근에는 수강생들에게 몇 가지 중요 동작을 가르쳐 준 후 알아서 안무를 만들게 한다. 안무가 홍영주(34·여) 씨는 “일반인의 춤 수준이 높아져 더 이상 재즈힙합 펑키 파핑 등 모든 춤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일반인이 자발적으로 만든 댄스 동호회만 100여 개에 이른다.

문화연대 이동연 사무처장은 “1990년대 말 테크노, 레이브 댄스의 유행과 함께 클럽 문화가 유입돼 대중이 음악에 맞춰 알아서 춤을 추는 것이 유행하게 됐다”며 “대중 스스로 춤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을 가질수록 자연스레 춤 문화도 발전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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