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타샤 댄스’… 러 문화통사

  • 입력 2005년 7월 2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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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댄스/올랜도 파이지스 지음·채계병 옮김/1016쪽·4만3000원·이카루스 미디어

‘지난 300년간 러시아 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유람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러시아의 근대화를 시작한 표트르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18세기 초에서부터 소비에트의 브레주네프 시대인 1970년대까지 300여 년간의 러시아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러시아 문화사가 마르크스주의와 인민주의로 이어지는 도식적인 사상사에 그치거나 문화적 인물들의 전기에 그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역사와 미술, 음악, 발레, 영화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최초의 본격적인 러시아 문화사라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오랫동안 동토의 땅이었던 러시아는 그러나, 푸슈킨 글린카 고골리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레핀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샤갈 칸딘스키 등 세계적인 스타 예술가를 배출한 문화의 산실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 거장들의 작품과 생의 일화는 물론 농노 예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일화까지 소개하고 있는 러시아 문화통사다.

지난 200여 년간 의회나 자유언론이 없었던 러시아에서 예술은 자유에 갈급한 사람들의 도피처이자 해방구였다. 정치, 철학, 종교적 논쟁이 허용되는 유일한 장(場)이기도 했다.

러시아 예술가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더 심한 국가의 박해를 받으며 두려움을 짊어지고 살았다.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교육적으로 민중과 소외된 이들은 그럼에도 스스로 문학과 예술을 통해 가치와 이념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그들은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런던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정치와 이데올로기, 사회관습과 믿음, 설화와 종교, 습관과 관습, 문화와 삶의 방식을 구성하는 모든 정신 유물을 버무려 ‘러시아인이란 누구인가?’를 탐구한다.

책 제목 ‘나타샤 댄스’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한 대목에서 따온 것. 젊고 아름다운 백작녀 나타샤가 우연히 농촌에 놀러 갔다가 배우지도 않은 농민의 리듬과 스텝을 본능적으로 깨달아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이다. 아무리 대단한 외국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인일 수밖에 없다는 고집을 드러낸다. 그 러시아인들의 고집이 이 책의 주제다. 비록 책은 두껍지만, 속도감 있는 문체에 매끄러운 번역, 60여 장에 이르는 희귀한 자료 사진과 컬러 도판들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원제 ‘Natasha's dance’(2002년).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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