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금기는 없다…한국 대중 主流문화의 현주소

  • 입력 2005년 6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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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건빵 선생과 별사탕’의 한 장면. 고교생이 여교사를 연애 상대로 점찍어 애인으로 발전시킨다. 얼굴 붉히면서 말도 못 건네던 짝사랑 여교사가 요즘 영화와 TV드라마에서는 연애 상대로 그려진다. 사진 제공 SBS
SBS ‘건빵 선생과 별사탕’의 한 장면. 고교생이 여교사를 연애 상대로 점찍어 애인으로 발전시킨다. 얼굴 붉히면서 말도 못 건네던 짝사랑 여교사가 요즘 영화와 TV드라마에서는 연애 상대로 그려진다. 사진 제공 SBS
《고교생이 여교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미혼모가 일과 육아에서 당당하다. 장애인들이 패션쇼를 하며 문신(文身)이 예술이 된다. 대중문화에서 소재의 금기가 깨진 것은 오래지만, 요즘에는 감히 내 놓고 말하지 못하던 것들이 당당히 주류 대중문화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이념의 금기가 사라지고 탈 권위 바람이 한창인 한국 사회는 이제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로워지고 있는 셈이다. 금기가 깨진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여교사 수난시대=짝사랑의 대상이었던 여교사들이 영화와 TV에서 성적(性的) 대상으로 코믹하게 그려지거나 당당한 연애 대상이 된다. 현재 극장가 최고 인기 영화 ‘연애의 목적’은 고교 영어교사가 교생 실습을 나온 여대생에게 “같이 자자”고 노골적으로 추근댄다. 남교사는 거의 겁탈에 가까운 일까지 벌이지만, 결국 사랑을 이뤄낸다. 액면 그대로만 보면 지위를 이용한 성폭행임이 분명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관객은 없다.

최근 110만 관객을 넘어선 ‘연애술사’도 여자 미술교사가 남자친구와 모텔에 함께 있었던 장면이 몰래카메라에 찍혀 인터넷에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이 영화에서 동료 여교사는 “술에 취한 척하고 모텔에 따라 들어가라” 혹은 “월급 1000만 원이 넘는 남자는 무조건 좋은 남자”라면서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TV드라마도 마찬가지. 최근 종영된 SBS ‘건빵 선생과 별사탕‘에서는 고교생이 여교사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선생님은 내거야”를 공공연히 떠들고, 현재 방영 중인 KBS ‘러브홀릭’ 역시 연인인 두 남녀의 첫만남 때 관계는고교생과 네 살 연상 여교사였다. 인기 절정인 그룹 ‘SG워너비’의 뮤직비디오에도 여자 미술교사와 남학생의 사랑이 등장한다.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 영어교사 유림(오른쪽)은 교생인 최홍에게 “요 앞 여관 갈래요?” “옆에 누워 봐도 돼요?”라며 노골적으로 접근한다. 사진 제공 싸이더스픽쳐스

영화평론가 이상용 씨는 “최근의 여교사 소재는 캔디 스토리가 주류였던 로맨스 영화의 관습을 뒤집는 발상”이라며 “직업상 윤리성이 강조되는 교사를 속물적으로 그림으로써 요즘의 성과 연애 풍속도를 강조하고 결국 인간은 다 같다는 보편성을 얻으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싱글 맘 전성시대=미혼모나 이혼녀들이 약속이나 한 듯 TV드라마 속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혼자된 엄마들이 고군분투 끝에 일과 사랑에 성공하는 내용들이 많다. 이야기들은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30%대 시청률을 보이며 일일드라마 중 최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MBC ‘굳세어라 금순아’는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잃고 시댁에 얹혀사는 어린 과부 금순이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지 않고 아이를 업고 녹즙 배달을 하는가하면 헤어디자이너 꿈을 이루기 위해 밝고 명랑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 아침 드라마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SBS ‘여왕의 조건’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 당한 이혼녀의 성공기를 그리고 있다. SBS ‘돌아온 싱글’의 여주인공 역시 아들 하나를 둔 과부지만 로맨스 소설과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몽상가로 나와 삶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

이 같은 싱글 맘들의 대중문화 속 활약은 △혼자된 기혼 남녀가 그만큼 많다는 현실의 투영 △미혼모나 이혼녀 같은 악조건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얻는 대리만족 △여성상위 시대의 방증이라는 분석들이다.

▽예술에서도 금기 파괴=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이기 쉬운 문신이 개인적 기호를 떠나 미술관에 등장했다. 작가 김준 씨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벌거벗은 인체에 새겨진 문신을 3D그래픽 대형 디지털 사진과 애니메이션 영상, 사진 등으로 다양하게 선보였다. 작가의 문신작품은 ‘금기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자 금기와 표현의 자유 사이를 모색하는 주장’으로 평가받았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사진작가 박영숙 씨의 ‘미친년 프로젝트 2005’도 파격적이다. 작가는 지난 6년 동안 실제로 정신병원 등을 취재하면서 만난 정신이상자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미친 상태’의 여자 모델들의 사진을 찍어 전시 중이다. 폭발 직전의 열정적 시선이나 정신을 놓아버린 무심한 시선들이 섬세한 카메라의 앵글에 잡혀 제목이 주는 거부감을 넘어 묘한 신비감을 자아 낼 정도다.

18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리는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에서는 20∼40대 장애 여성 7명이 패션모델로 무대에 선다. 가요계에서는 여성그룹 ‘레이디’가 트랜스젠더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나섰다. 영화 ‘달마야 놀자’ 시리즈, KBS ‘개그콘서트’의 출산드라 캐릭터처럼 스님이나 목사조차 희화화된다.

바야흐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금기가 소재가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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