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침묵과 기다림의 미학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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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럽에서는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고유명사가 유행했다. 서구 17개 나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건강을 가장 많이 해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과 대책을 위한 워크숍에서 탄생한 말이다.

유럽 현대인들의 건강을 가장 손상시키는 것은 음주(飮酒)였고 다음이 비만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였다. 술과 비만과 스트레스는 서로 유기적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

어쨌든 음주는 많은 현대병을 몰고 오는 주역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17개 나라 중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음주량이 가장 많은 데도 병은 제일 적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그야말로 프렌치 패러독스다. 왜 그럴까? 붉은 포도주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란다. 포도주 없이는 프랑스 문화를 얘기할 수 없다. 그들이 즐겨 마시는 붉은 포도주 속에 노화(老化)를 방지하고 여러 질병들, 특히 초기 위암을 치유할 수 있는 폴리페놀이라는 효소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발효 숙성되면서 생기는 폴리페놀은 우리의 오랜 전통차 속에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더구나 몇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이 먹어온 김치와 된장 속에도 들어 있는 것이다.

김치 된장 마늘, 그리고 오랜 민족문화의 전통으로 이어져 온 차. 이것들은 우리 삶을 지탱해 준 가장 깊은 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그렇게도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이것들의 덕분이었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발효와 숙성, 그것은 기다림에서 오는 것이다. 깊고 긴 시간의 사유 속에서 침묵과 기다림의 미학이 만들어진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경박함, 사소한 일에 대한 분노, 신경질, 이해 부족, 불평불만…. 이 모두가 숙성되지 못하고 푹 익지 못한 생풀 같은 사고에서 비롯된다.

우리 민족의 21세기 화두는 푹 익고 숙성된 사유를 생산해 내는 일이다. “차를 먹는 백성은 흥하고, 술을 먹는 백성은 망한다”는 실학의 거두 다산 정약용의 말이 다시 새롭다.

여연 스님 전남 해남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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