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엽서로 본 구한말 풍속

  • 입력 2005년 6월 4일 08시 10분


코멘트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인 죄수들을 관아 앞에 앉혀놓고 찍은 풍속 엽서사진. 사진 제공 민음사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인 죄수들을 관아 앞에 앉혀놓고 찍은 풍속 엽서사진. 사진 제공 민음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권혁희 지음/288쪽·2만 원·민음사

여기 네 명의 죄인이 있다. 목에 칼을 쓴 채 물끄러미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세 남자와 맨발의 소녀. 그리고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카메라를 든 촬영자가 있다.

죄인들은 왜 감옥에 있지 않고 관아의 뜰에 나와 앉게 되었을까?

이들은 사진을 찍었다기보다는 ‘촬영을 당했다.’ 촬영자는 누구였을까? 그는 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문제의 사진은 제국주의가 세계의 지도를 다시 그리던 19세기 말∼20세기 초 유행했던 풍속 사진엽서다. 엽서의 제목은 ‘죄인들.’

사진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사진에 보이지 않는 촬영자의 시선을 탐구해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죄인들’의 제작 주체는 조선의 전근대적인 형법제도를 야만으로 몰아세웠던 일본인들이었다.

“‘죄인들’은 촬영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것은 서양에 의해 만들어진 동양의 모습이며, 지배자의 시선이 투영된 타자(他者)의 이미지다.”

지배자의 시선은 일본의 시선이며 그것은 서구 지배자의 시선과 교차하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시선을 조선에 투영한다.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식민지의 ‘백성’이나 침략자의 ‘신민’이나 할 것 없이 개인의 상상과 대중의 무의식 속에 살아 있는 문화로 스며들었다. 사진술의 발달로 시각 이미지가 양산되면서 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대중까지 포섭했다.

사진엽서는 한 해에만 수십억 장이 발매되어 서구 문명의 장밋빛 미래를 재현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문화 제국주의의 축소판이었다.

저자는 점령국의 사진사들이 조선을 비롯한 피지배국의 이모저모를 찍은 300여 장의 사진자료를 놓고 ‘총’보다 더 무서운 ‘카메라’의 문화적 폭력성을 파헤친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시각 유물이었다.

저자는 일제에 의해 미개(未開)의 덧칠을 뒤집어썼던 조선의 이미지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재생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한다.

“한국의 미(美)라는 이름으로 반복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이미지들이 식민지 시대에 대량 생산되었던 ‘조선 풍속’의 이미지들과 너무나 닮아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들 이미지가 도처에서 호명되고 있으니….”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