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5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아널드 하우저

  • 입력 2005년 6월 4일 03시 02분


코멘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선사시대부터 영화의 시대까지 서구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문학 미술 음악 건축 영화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문학예술 작품이 한 시대의 생생한 산물이라는 것을 폭넓은 역사적 안목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탁월한 심미안으로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전공 분야와 관계없이 문학예술을 공부하려는 학생은 물론 소박한 감상자를 위해서도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논할 때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풍부한 해명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하나의 예술작품 또는 한 시대의 주도적 양식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탄생하는가. 어떤 사회적 요인에 의해 양식의 변화와 교체가 이루어지는가. 서로 다른 예술 장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예술작품과 수용자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변수가 어떻게 작품의 미적 특성으로 구현되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저자는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며 독자의 사고를 자극한다.

이 책은 수천 년에 걸친 서구 문학예술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의 바탕에 깔려 있는 방법론을 간단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저자의 기본 입장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짚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구석기 시대부터 중세까지로, 이 시기 예술의 기본 성격을 저자는 “실용적 목적과 미적 관심의 직접적 일치”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이 추구하는 미적 가치는 자연의 지배나 종교적 제의 같은 예술 외적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는 동물 사냥 장면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수렵에 의존하던 원시 경제생활을 촉진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기능했다. 중세 기독교 예술 역시 예술을 실용적 목적에 종속시킨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그 반면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 예술은 차츰 그러한 실용적 목적에서 벗어나 나름의 자율성을 추구한다. 근대 예술의 자율성은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동시에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인간 보편적 가치의 추구가 이제는 예술의 몫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대 예술의 자율성은 예술이 그 본연의 휴머니즘적 지향성을 회복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 시민사회의 ‘합리화’(막스 베버) 과정과 더불어 사회가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고 자본과 권력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면서 다시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의 부정적 힘에 저항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근대 예술의 탄생 조건이었던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응전이 곧 현대 예술의 본령이 되는데, 저자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최초로 민감하게 포착한 낭만주의가 그런 의미에서 현대 예술의 기점이라 보고 있다.

독자는 저자의 생각을 미리 파악하려고 덤비기보다는, 관심이 끌리는 시대나 사조 또는 작품에 관한 서술을 읽어가는 동시에 실제로 해당 작품을 감상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저자의 생각을 음미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

임홍배 서울대 교수 독어독문학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