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1년 네팔 왕실 총격사건

  • 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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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나라. 사람들의 모습마저 우뚝 솟은 히말라야 연봉을 닮았을 것 같은 나라. 세계인의 마음속에서 ‘은둔의 왕국’ 네팔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인 2001년 6월 1일이었다.

그날 저녁 네팔 왕국의 나라얀히티 궁전에서는 왕실 가족모임이 열렸다. 언제나 그렇듯 왕족들은 술과 여흥을 즐기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위스키를 홀짝거리던 디펜드라 왕세자가 옷을 갈아입고 행사장에 다시 나타난 것은 뜻밖이었다. 파티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투복 차림에 자동소총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짜고짜 아버지 비렌드라 왕을 정조준해 소총을 쏘았다. 비명이 터졌다. 말리는 가족들도 총탄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국왕과 왕비, 공주 등 여덟 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디펜드라는 자신의 머리에도 총 한 발을 쏜 뒤 뇌사 상태에 빠졌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밝힌 참극의 전말이었다.

영국 이튼칼리지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엘리트이자 개방적인 사고와 언행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던 왕위 계승권자가 왜 국왕 살해, 부모 살해, 형제 살해라는 3중의 범죄를 저질렀을까.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혼을 놓고 부모와 왕세자 사이에 빚어진 갈등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세자는 전직 외무장관의 딸인 데브야니 라나를 사랑했지만 국왕과 왕비는 결혼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실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 ‘살인범’ 디펜드라가 나흘 만에 숨을 거둠으로써 왕위는 다시 그의 삼촌이자 비렌드라의 동생인 갸넨드라에게 돌아갔다.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많은 국민은 어부지리로 왕위에 오른 갸넨드라가 진상을 숨긴다고 의심했다. 전왕 비렌드라는 1990년 입헌군주제와 복수정당제를 도입하는 등 점진적인 개혁 노선을 걸어왔으나 갸넨드라 신왕은 즉위 후 끊임없이 민간 정치인의 권한을 제한하려 시도했다.

올해 2월 1일, 갸넨드라 왕은 드디어 정부를 해산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절대왕정을 부활하려 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원조마저 끊기자 3개월 만에 비상사태는 해제됐다. 그러나 국민의 신망이 땅에 떨어진 가운데 복고 성향의 국왕이 지배하는 네팔 정국은 여전히 살얼음판에 비유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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