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6>카라마조프가의 형제-도스토예프스키

  • 입력 2005년 5월 26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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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과 사상을 집약하고 있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자 19세기 러시아 장편소설의 위대한 시대를 장엄하게 끝맺는 걸작이다. 이 소설은 신에 의해 세상에 허용된 악에도 불구하고 신을 변호하고 창조의 목적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구상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영원한 주제(믿음 자유 악 구원 인류의 운명에 관한 문제들)를 범죄소설의 틀을 빌려 탐구하며 그 속에서 친부 살해를 카라마조프 집안의 사건을 넘어선, 아버지―신의 살해라는 이념적 차원과 연관시킨다. 그는 각각 정념과 이성과 신앙을 대변하는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형제의 삶과 의식을 좇아가면서, 무신론적 합리주의나 공리주의가 아닌 영혼의 자유와 진정한 인간애, 속죄, 수난,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하는 신앙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신앙을 소설에서 실천하는 인물은 알료샤와 그의 영적 아버지인 조시마 장로다. 그러나 작가의 창작 계획상 미완으로 머문 이 소설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진리를 자신의 내면에 지닌 ‘신의 인간’ 알료샤가 아닌 ‘마돈나의 이상’을 동경하면서도 끊임없이 ‘소돔의 이상’에 이끌리며 자신의 고통을 통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죄’의 의식과 인간성의 부활로 나아가는 드미트리다.

그 못지않게 흥미로운 인물은 합리주의자 니힐리스트를 자처하며 “이 세계의 입장권을 신에게 돌려주겠다”는 ‘반역자’ 이반이다. 그의 창조물인 대심문관에 따르면 내적 자유를 감당하기에 너무 약한 존재인 인간에게 자유는 곧 저주다. 그런즉 자유를 인간에게 부여했던 그리스도는 기적, 신비, 권위에 의거하여 자유 대신 빵과 지상낙원을 보장하는 공식적 기독교에 의해 수정되어야 한다.

‘대심문관의 전설’은 로마가톨릭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비판으로서, 신적 원칙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분석으로서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스스로를 ‘불신과 회의의 자식’이라 불렀던 본래 성향과는 모순되게 작가가 자신에게 부과한 과도한 종교적 역할은 소설에 의도치 않은 파열을 가져온다. 과도하게 열렬한 믿음은 오히려 긍정을 부정과 동행케 한다.

그는 반역자 이반과 대심문관의 반대편에서 영혼 불멸과 진정한 신앙을 열렬히 전도하지만, 이반의 말 속에는 그의 목소리가 함께 울린다. 대심문관에 대한 그리스도의 입맞춤 역시 인류에 대한 사랑에서 그들의 지상적 행복을 위해 자신의 영원한 행복을 희생하는 자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누설한다.

이반도 파열을 보인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의심하며, 믿음을 갈구하나 오만함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작가에게 나타나는 파열, 타락의 심연과 천상의 심연을 마음속에 함께 지닌 인물들, 찬반 사이에서의 흔들림 때문에 이 작품은 변신론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실패한 명제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실패는 소설의 ‘예술적’ 성공을 의미한다. 미의 본성에 대해 드미트리가 한 말 ‘소돔의 이상과 마돈나의 이상을 동시에 찬미하고 추구하는 것’은 이 소설 전체에도 적용된다. 영혼의 불멸과 구원의 문제에 천착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소돔에서 마돈나에 이르는 모든 길에 뻗쳐 있는 이율배반으로 가득찬 삶, 살아 있는 삶에 바치는 송가다.

김희숙 서울대 교수 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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