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거장들]<7·끝>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 입력 2005년 5월 23일 0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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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문학에 담아온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2001년 방한 때 주한 프랑스 문화원에서 강연하던 모습. 오른쪽은 필자 최미경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문학에 담아온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2001년 방한 때 주한 프랑스 문화원에서 강연하던 모습. 오른쪽은 필자 최미경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나는 학창 시절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4)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가는 고독하게 생활하는 수도사나 은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처녀작 ‘조서(調書)’를 1963년에 펴내 르노도상(賞)을 받았고, 그 젊음과 특이한 문학적 세계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비서구적이고 친자연적이다. 그의 작품은 소설이기보다 철학 에세이, 종교적 성찰이나 명상, 때로는 주술사의 마술, 무당의 신들린 넋두리 같다. 과거 장 폴 사르트르나 프랑수아 모리악이 자기 식대로 참여문학을 했듯이 르 클레지오도 자기 식으로 현대 사회에 맞서 약자와 피지배자, 자연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엄연히 프랑스 문단의 대표 작가지만 그의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와 같은 지배자들의 땅이기보다는 피지배자들의 땅, 제3세계인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그의 주인공들은 마리, 피에르, 장으로 불리기보단 몽도, 나시마, 알리아 같은 낯선 이름으로 불린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가 2001년 서울에 왔을 때 나는 통역을 맡았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세속의 물질적인 것과 먼 사람처럼 보였다. 그와 동행한 부인 제미아가 세상살이에 필요한 일들과 대면하고 있는 듯했다. 그때 르 클레지오는 전남 화순군 운주사를 방문했는데 나중에 그 감동을 ‘운주사 가을 비’라는 시로 보내왔다.

이번에 다시 서울을 찾는 그에게 전화를 해보니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 ‘우라니아(Ourania)’라는 새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우라니아는 그리스 어원으로 ‘하늘’을 뜻한단다.

그는 가끔 딸 둘이 사는 파리로도 건너가 지내지만 살고 있는 곳은 미국 뉴멕시코 주 엘파소 근처의 앨버커키다. 빌 게이츠가 초기에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차렸던 곳이다. 그는 뉴멕시코 주에서 문학교수를 오래 하다가 퇴직했다. 그는 멕시코 인접지의 자연적, 인종적 환경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여긴 미국이지만 미국 같지 않아서 맘에 든다. 나는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자랐는데 프랑스 군에 입대한 뒤 멕시코에 보내졌다. 거기서 엠버라 인디언들을 만났는데, 그 경험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세계와 예술, 걷고 먹는 방식, 심지어는 내 꿈까지. 뉴멕시코 주에도 인디언과 히스패닉이 아주 많다.”

그의 가족은 프랑스 혁명기에 프랑스를 떠나 아프리카의 모리셔스 군도로 옮겨갔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하자 니스로 건너가 낳았다. 그래서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와 모리셔스 두 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덟 살이 된 뒤에 아버지가 일하던 나이지리아 서부로 건너가는데 거기는 영국령이라 영어를 쓰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의무장교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 둘 다 모국어처럼 쓴다. 이런 그가 프랑스(그리고 영국)에서 왜 멀리 떨어져 사는 걸까?

“서구는 기독교 문명에 바탕을 둔 가치를 어디에나 기준처럼 적용해 왔다. 하지만 나는 멕시코 인디언들을 보고 다른 가치가 있다는 걸 배웠다. ‘자유’라는 가치도 어쩌면 그리스 시민이 아닌 그들의 노예들한테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 백인들에게 짓밟힌 원주민들의 이야기에도 보편성이 있다. 나는 여기서 그것을 감지하면서 사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문학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는다”며 “단지 르노도상 심사위원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후보작을 읽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의 진정한, 유일한 조국은 아마 프랑스어일 것이다. (또 다른 모국어이긴 하지만) 영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도 프랑스어로는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 클레지오는 2001년에 한국을 찾아온 뒤 아시아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을 갖게 됐을까. 아직 그의 작품에 아시아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지금까지 작품에서는 주로 내가 잘 아는 아프리카 모리셔스나 멕시코 인디언들의 일들이 많이 소재로 등장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열려있는 국민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전통과 현대, 물질과 정신이 조화된 문화를 구가하고 있다. 나는 서서히 한국이나 아시아에 관심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다.”

그에게 최근에 프랑스어로 소개된 한국 작품들에 대해 물어 보자 나와 장 노엘 주테가 번역한 황석영 단편집 ‘삼포 가는 길’(쥘마 출판사)을 이야기했다. 그는 “황석영과 나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의 서정적인 묘사는 참 아름답다”면서 “이번에 서울로 가기 전에 황석영의 ‘손님’을 읽고 가겠다”고 말했다.

최미경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한불과 교수

○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 남부 니스 출생 △1960년 영국 브리스틀대 유학

△1963년 ‘조서’ 발표. 르노도상 수상

△1980년 ‘사막’ 발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 수상

△1994년 ‘생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불어를 쓰는 작가’로 선정됨

△2002년까지 뉴멕시코대에서 불문학과 미술사 교수로 재직

△30여 권의 소설, 수필을 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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