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랩으로… 마임으로… 노래로… 詩낭송‘개성시대’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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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동호회인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시를 가사로 만들어 랩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요!” 라는 외침과 함께 실제 랩퍼처럼 쭉 뻗는 손 동작이 인상적이다. 김윤종기자
시 낭송동호회인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시를 가사로 만들어 랩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요!” 라는 외침과 함께 실제 랩퍼처럼 쭉 뻗는 손 동작이 인상적이다. 김윤종기자
▽사례 1▽

“마약류 끊기 모임의 재활치료 환자들에게 정지용의 시 ‘백록담’을 낭송해줬습니다. 그러자 무뚝뚝하던 그들이 친근감을 표시하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더군요.” 마약류 의존자들을 위한 재활 치료상담가 차혁수(39·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씨는 지난해 6월부터 시 낭송에 빠져 살고 있다.그는 “시 낭송을 통해 다른 사람과 따뜻함을 나눌 수 있어 치료 상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례 2▽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쿵짝.”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재능빌딩 5층.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7월에 있을 ‘시 가극’을 연습 중이다. 10여 명이 강한 비트의 힙합 리듬에 맞춰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랩(Rap)으로 낭송했다. 주부 강병혜(여·46) 씨는 “시 랩, 시 극, 시 노래 등 다양한 형태로 시를 표현할 수 있다”며 “눈으로 읽던 시를 낭송하니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시 낭송 모임이 늘고 있다. 시 낭송은 운율에 맞추어 시를 암송하는 것.

전국에서 활동 중인 시 낭송 동호회는 70여 개가 넘는다. 대표적인 시 낭송 단체인 한국시낭송가협회(회장 김문중), 재능시낭송협회(회장 정영희)의 회원 수는 각각 1000여 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대부분 일반인. 재능시낭송협회 정영희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시 낭송 모임을 찾는 사람들이 30% 이상 늘었다”며 “시 낭송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외로움에 지친 현대인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 낭송 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시 낭송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정기적으로 시 낭송가를 선발하는 시 낭송 대회도 연다.

인터넷에서도 시낭송 모임이 활발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www.daum.net)에는 10여개의 시 낭송 카페가 있다. KBS 1TV 'TV문화지대‘ 프로그램의 시 낭송 코너인 ‘낭독의 발견’의 다음 팬 카페 회원은 300명에 이른다. 이들은 게시판에 좋은 시를 올려 공유하고 ‘낭독의 발견’에서 낭송되는 시에 대한 감상 평도 쓴다.

블로그에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음악과 함께 링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블로그 운영자 김혜영(여·27) 씨는 “음악과 시는 궁합이 잘 맞기 때문에 틈틈이 블로그에 올린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읊곤 한다”고 말했다.

시 낭송 형태도 다양해졌다. 시에 화음을 붙인 ‘시 노래’, 시로 대사를 구성해 스토리를 만드는 ‘시 극’, 시와 판토마임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 마임’, ‘시 랩(Rap)’….

전문적으로 시 노래를 하는 가수도 있다. 시 노래 가수인 윤봉제(42) 씨는 “시 노래 가수가 전국적으로 100명이 넘는다”며 “좋은 시를 찾아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문정희(文貞姬·시인) 동국대 석좌교수는 “눈으로 읽던 시가 시청각 시대에 맞게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 낭송으로 변모한 것”이라며 “시를 혼자 읽었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낭송을 통해 정서적 공감을 나누는 ‘함께 하는 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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