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미래 트렌드’ 올라타기

  • 입력 2005년 4월 2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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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사회 흐름, 즉 트렌드를 읽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다.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어느 동네가 좋은지, 어떤 사업이 유망한지, 자녀를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보내야 할지…. 이 같은 각종 선택에 트렌드가 연관되어 있다. 집안의 가장이 트렌드에 어두우면 식구 모두가 고생이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서점에 가 보면 ‘10년 뒤 세계’ ‘대한민국 트렌드’ 같은 미래 예측서들이 봇물 터지듯 나와 있다.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를 얘기하는 책들이다. 예측은 틀리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호기심은 마르지 않는다. 어느 미래학자의 말대로 우리는 ‘놀라운 일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 가운데 향후 국력을 판가름할 분야가 과학기술이라는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당분간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학기술의 빅뱅 시대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과학혁명 속의 이공계 위기▼

과학기술의 미래를 낙관하는 중요한 근거는 연구자에 대한 엄청난 보상이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源), 인간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의약품과 난치병 치료제, 놀라운 성능의 컴퓨터를 개발해 낼 수 있다면 연구자에겐 천문학적인 부(富)가 주어진다. 그들을 지원한 국가와 기업도 단숨에 강대해질 수 있다. 이런 현실적인 동기가 각국 정부와 연구자들을 자극시켜 과학기술이 약진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만연된 한국은 이 점에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더 암담한 것은 청소년들이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잃고 있는 점이다. 200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회원국 40개국을 상대로 이뤄진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와 ‘동기’는 각각 31위와 38위로 최하위권이었다. 과학의 학업성취도는 2000년 1위에서 4위로 밀렸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수학, 과학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는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를 어둡게 볼 수밖에 없게 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로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과학전공자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도 과학 마인드가 없으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한다. 한국은 여기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가.

미래 예측에서 다른 키워드는 ‘포스트 모던’이라는 문화적 흐름이다. 포스트 모던은 198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현상이지만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포스트 모던의 특징은 감성 중시와 다양성으로 요약된다. ‘한류 현상’ 등 한국인의 강점은 감성의 시대에 부합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감성은 감성만으론 존재하지 않으며 이성과 보완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성의 뒷받침이 없는 감성은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의 이성은 ‘읽는 문화’의 위기, 지성의 공백에서 나타나듯이 감성의 과잉으로 거의 구석에 몰려 있다. 감성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도 이성의 균형이 절실한 형편이다.

▼理性의 공백과 획일 사회▼

포스트 모던이 요구하는 다양성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획일적 단편적 시각은 최근 ‘친미’ ‘반미’를 나누는 이분법에서 드러나듯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휩싸고 있는 망령 같은 존재다. 다양성이 격려 받고 찬양되어야 할 시점에 다른 의견은 소외당하고 공격받고 있다.

우리의 미래에는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국가가 대비하지 못하면 온 국민이 피해를 볼 것이고 가뜩이나 고단한 개인의 삶은 더 피폐해질 것이다. 미래를 향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경쟁국들을 보면서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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