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저팬 콤플렉스’

  • 입력 2005년 4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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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은 전자업계의 황제였던 소니가 비틀거리고 삼성이 도약한다는 기사를 연일 내보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삼성전자의 약진에 놀라워하며 그 비결을 분석하기에 바쁘다. 삼성전자 도쿄지사 임원들한테 강연을 해 달라는 일본 기업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가 거둔 이익은 마쓰시타 소니 히타치 NEC 도시바 후지쓰 등 일본 전기전자업체 상위 10개사를 합한 것보다 훨씬 많다.

한 일본 기업 경영자는 필자에게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삼성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그 역시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일본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미국 다음인 경제대국이다. 3위인 독일의 GDP를 두 배 가까이 앞선다. 한국경제는 짧은 기간에 비약적 성장을 했지만 아직 12위다. 학창시절 전교 2등에 대해서는 모두 기억하지만 12위는 누구였는지조차 모른다. 일본의 GDP는 한국의 8배나 된다.

일본 경제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의 탄탄한 기반 위에 있다. 한국은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규모 기술수준 수익성에서 일본 기업들과 맞상대가 못 된다. 나라 경제는 선수 한 명만 잘하면 금메달을 따는 올림픽 경기와는 다르다. 한국에는 북한이라는 무거운 부담도 있다.

한국은 서울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다. 한국에 오래 주재한 일본 특파원은 서울이 무너지면 한국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일본은 도쿄가 없어도 오사카가 있고 나고야가 있다. 일본 농촌에 가 보면 번듯한 주택에 식구별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일본이 비록 이번에는 이웃 국가들의 마음을 잡지 못해 실패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결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우리보다 여전히 한참 앞서 있다.

20세기 초 국가경영에 실패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한 한국인들은 한 세기 동안 ‘저팬 콤플렉스’를 가슴에 안고 살았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1964년에 치렀고 한국은 1988년에 서울올림픽을 치렀다. 한국인들 입에서 “일본에 10년 또는 20년 뒤진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일본을 가까운 장래에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저팬 콤플렉스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했다.

그러나 저팬 콤플렉스의 뿌리를 잡아 흔들어 놓는 실적이 경제 문화 분야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조선 전자 철강 휴대전화 같은 분야에서 일본에 앞서거나 대등한 위치에 올라섰다. 올림픽은 24년 늦었지만 월드컵은 2002년에 공동 개최했다. 한국 대중예술이 만든 한류(韓流)가 일본을 달구고 있다. 서울 강남 번화가의 화려함이 도쿄 왕궁 근처 긴자(銀座)를 넘어섰다. 삼성전자 하나로는 안 되겠지만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여러 개 나온다면 일본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중국인들처럼 일본대사관에 돌 던지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감정적인 반일로는 일본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경제력과 문화의 힘으로 한 세기에 걸친 저팬 콤플렉스에서 탈출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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