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유랑 가족’…물에 떠내려가는 잎사귀같은 삶

  • 입력 2005년 4월 8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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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펴냈던 공선옥 씨는 “마흔에 길을 나섰더니 ‘유랑 가족’을 안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펴냈던 공선옥 씨는 “마흔에 길을 나섰더니 ‘유랑 가족’을 안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랑 가족/공선옥 지음/267쪽·8500원·실천문학

작가 공선옥(42) 씨는 태어나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전남 곡성에서 살았다. 그 뒤로는 광주에서 서울, 다시 광주로 갔다가 곡성 여수를 거쳐 지금은 춘천에서 살고 있다. 25일에는 또 전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스스로 ‘유랑 작가’라고 생각하는 그가 새로 펴낸 연작 장편 ‘유랑 가족’은 흐르는 개울물 위를 떠내려가는 잎사귀 같은 인생들을 다섯 편의 이야기 속에 엮어낸 작품이다. 공 씨는 “내 삶에 밴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글감을 찾아 나섰다기보다 어느 결엔가 이야깃거리들이 나한테 들어왔다”고 말했다.

‘유랑 가족’의 첫 이야기는 ‘겨울의 정취’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사보에 실을 겨울 풍경을 찍으려고 시골마을 신리를 찾아간 사진작가 ‘한’의 눈동자에 비친 부초들의 이야기다.

신리 사람 김달곤의 부인 서용자는 읍내 식당에서 일하다가 서울생활을 꿈꾸는 조선족 명화를 따라 야밤에 달아나고 만다. 서용자가 서울 신림동에서 노래방 아줌마로 일하고 있는 걸 봤다고 제수씨가 귀띔해주자 김달곤은 서울서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면서 노래방 뒤지는 일로 밤을 새운다. 언제 남편이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서용자는 카센터에서 일하는 훈이 씨의 아기를 임신한 채 새 인생을 꿈꾸지만 훈이 씨의 생각은 딴 데 가 있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의 밤 김달곤은 다시금 노래방을 뒤지는데 비슷한 시각에 서용자는 자기가 버림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뿌리 내리지 못한 인생들의 서글픈 삶을 다루고 있는데도 김달곤과 서용자를 둘러싼 여러 가족, 갖가지 얼굴과 사연, 생기(生氣)와 애정들을 구체적으로 다루면서 이야기는 묘한 활기를 띤다.

김달곤은 자기가 위로받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 난데없이 나타난 고향 후배 영갑을 달래야 한다. 영갑도 “달아난 마누라를 찾기만 하면” 하면서 이를 갈고 있다. 김달곤은 짐짓 의연하게 말한다. “갈 사람 이제 그만 놓아줘라. 순리에 따라야지.”

그 뒤에 이어지는 ‘가리봉 연가’ ‘그들의 웃음소리’ ‘남쪽 바다, 푸른 나라’ ‘먼 바다’에서도 사진작가 ‘한’의 여로 주변에 섞여든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수몰지구에 사는 필리핀 색시, 어른들 눈길을 끌기 위해 괜히 위악적으로 튀는 샘밭골 꼬마들, 고물 트럭 한 대를 몰면서 빈집털이에 나선 만수와 양대석 같은 이들이 그렇다.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 사진작가 ‘한’ 역시 사보 편집자의 눈 밖에 나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위태위태한 삶 속에 있다. 그러고 보면 작가 공 씨의 말처럼 “도시든 시골이든 세상사는 사람들 거의 모두 유랑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유랑 속에서도 따스한 위안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혈혈단신 고아가 된 아이를 거두어들이는 인숙이나 영주 고모네 가족들이 그렇다. 이 소설 역시 그렇지 않은가.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서럽고 떠도는 이들의 희로애락을 하나하나 채집해 이렇게 아름다운 모자이크화(畵)로 만들어냈으니.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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