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실’…욕망의 힘으로 자유를 얻은 여인

  • 입력 2005년 2월 25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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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상금인 1억 원 고료(제1회 세계문학상)를 받아 화제가 된 김별아 씨. 김 씨는 신라시대 여인 미실의 일대기를 그린 수상작을 통해 욕망에 솔직하고 싶어 하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다뤘다. 사진 제공 문이당
국내 최고 상금인 1억 원 고료(제1회 세계문학상)를 받아 화제가 된 김별아 씨. 김 씨는 신라시대 여인 미실의 일대기를 그린 수상작을 통해 욕망에 솔직하고 싶어 하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다뤘다. 사진 제공 문이당
◇미실/김별아 지음/352쪽·9500원·문이당

국내 최고인 1억 원 고료(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화제가 된 소설이다. 1994년 등단 이후 장편소설 ‘개인적 체험’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등을 통해 삶과 작품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평을 들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작품의 무대를 아예 시대를 뛰어넘어 신라로 옮겼다.

제목 ‘미실’은 신라시대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여인 이름. 아직도 결론나지 않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제쳐두고, 작가는 비록 고대의 여인이지만 성적(性的)으로 자유로웠던 미실이라는 여인을 통해 욕망에 솔직하고 싶어 하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다뤘다.

여인 미실의 직업은 색공(色供). 색(色), 즉 몸을 왕에게 바치는(供) 일로 후궁의 개념과 비슷하지만, 신라 때는 당당하게 모계 혈통을 잇거나 아예 왕족으로 대접받았다는 점에서 다르다. 미실은 당시 모계혈통 중 하나인 대원신통의 여자였다.

어릴 적 외할머니 옥진에게서 온갖 성적 기예를 배우며 성장한 주인공이 왕의 눈에 띄어 입궁하지만 권력다툼에 휘말려 궁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입궁한 뒤 권력싸움에서 승리해 왕실 권력을 장악한다는 줄거리다.

그동안 영화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사랑이나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적 여성이거나, 아니면 치명적 아름다움으로 상대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 파탈 형으로 거칠게 구분된다. 이에 비해 작가가 이 책에서 시도한 미실의 캐릭터는 모성과 욕망을 함께 가진 조화된 존재였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자유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당당하고 지혜로운 여성이 바로 미실이다.

‘미실은 흘러내린 옷자락을 거두려 들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것은 흘러내리는 대로, 걸리는 것은 걸리는 대로, 울창한 수풀을 자유로이 빠져 나가는 바람처럼 흔연히 두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도록 훈련받았다. 무엇에도 조바심치거나 부러 채근하지 않도록, 스치고 스쳐 지나가고, 흐르고 흘러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두어 고이도록 하지 않았다. 시간은 그녀 곁에 머물러 아주 천천히 스치고 흘렀다. 미실은 바스락거리는 모든 시간의 소리를 들었다.’

또 책 중반에 묘사된 곱사등이와의 섹스는 작가가 여성의 섹스를 정화(淨化)의 한 측면으로 보는 실마리가 담겨 있어 이색적이다.

‘놀랄 것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미실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천상의 선녀가 아니라고, 하늘에서 하강하지 않았어도 마땅히 너를 위로할 지상의 여인이라고, 미실은 물기가 넘치는 젖은 눈으로 말하였다. …깨끗하고 더럽고 아름답고 추하고 귀하고 천함의 경계라니! 그런 건 아예 없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미실은 발가벗고 숲을 내달리던 유년의 아득한 기억 속으로 무람없이 거슬러 올랐다. 그곳에서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미실’은 창조적 관점이 미흡하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서술 때문에 로맨스 구조에 가까우며 결말부에서 상투적 계몽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탐구심이 돋보이는 문장과 호방하게 밀고 나가는 서사력,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를 응축해 놓은 솜씨가 돋보였다는 호평도 들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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