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아내여, 남편들도 피곤하다"

  • 입력 2005년 2월 10일 1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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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즐거운 명절 휴가에도 남편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명절만 다가오면 아내들은 차례상 차리기와 손님치레 스트레스로 고통을 호소한다. 한 병원의 여론조사 결과 주부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명절증후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명절증후군’이 과연 주부들에게만 있는 현상일까.

고통 받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심정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혹여 이번 명절을 끝으로 “다시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남편도 많다.

명절의 뒤끝이 나쁠 경우는 시집과의 갈등이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어져 감정 섞인 부부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혼 14년차인 김모 씨(44)는 올해 설날 차례가 끝나자마자 점심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하루 밤만 자고 집으로 가자는 아내를 겨우 설득해 본가에 3일간 머무른 것이 화근이 돼 대판 싸움이 일어났다.

음식만들기, 제사준비, 상차리기, 설거지 등 3일간 집안일에 치인 박씨가 일을 도와주지 않는 손아래 시누이와 일전을 벌인 것.

홀어머니는 시누이 편을 들었고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운데서 전전긍긍했다.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불어 오른 아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6시간 내내 부인의 불평을 들어야했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버럭 소리를 질러봤지만 속상하긴 마찬가지.

올해 “시골집에 가기 싫다”는 부인을 가까스로 설득해 내려갔으나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는 내내 집안 분위기는 썰렁했다.

김씨는 “누구 편을 들 수도 없고… 너무 속상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하소연했다.

자영업을 하는 한모 씨(54)도 명절 때마다 큰 홍역을 치른다.

5년전 설날, 명절 내내 고된 일에 시달리던 아내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어머니, 동서와 다툰 일이 있었다.

귀경 후 아내가 시댁에 대한 불평을 쏟아냈고 나중에는 신세한탄으로까지 이어졌다. 곁에서 인내하며 듣고 있던 한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고 결국 그날 부부는 크게 싸웠다.

한씨는 “그날 이후 아내는 시댁에 가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내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고 나를 혼낸다”면서 “여성들도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살펴야하는 남편들의 처지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남편들의 처지가 다 이런 것 만은 아니다.

결혼 4년차인 회사원 최모 씨(33)는 명절이면 본가와 처가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번 설은 차례를 지낸 뒤 가족이 힘을 모아 뒤처리를 빨리 끝낸 뒤, 부모와 처부모를 모시고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

가정이 화목한 것은 당연지사. 외동딸인 아내는 남편이 최고란다.

요즘은 최씨처럼 일찍 차례를 마치고 여행을 떠나거나 노래방, 영화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이 많다. 또 형제끼리 미리 제사음식을 나눠 준비해오기도 한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가족간의 우애와 사랑을 확인해야하는 명절이 아내에게 ‘고통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남편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호주제가 헌법불일치 판정을 받고 여권신장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져 간다. 남편들도 고단하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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