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식인의 죄와 벌’…오류 얼룩진 ‘佛 과거청산’

  • 입력 2005년 1월 28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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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모리아크(1952년 수상·왼쪽)와 알베르 카뮈(1957년수상). 1944년 8월 프랑스가 해방된 뒤 ‘부역자 숙청’ 논란이 일자 예순 살의 모리아크는 “자비”를, 서른한 살의 카뮈는 “정의”를 외치며 격돌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모리아크(1952년 수상·왼쪽)와 알베르 카뮈(1957년수상). 1944년 8월 프랑스가 해방된 뒤 ‘부역자 숙청’ 논란이 일자 예순 살의 모리아크는 “자비”를, 서른한 살의 카뮈는 “정의”를 외치며 격돌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식인의 죄와 벌/피에르 아술린 지음·이기언 옮김/256쪽·1만2800원·두레

1944년 8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서 해방된 후 시작한 것은 ‘과거청산’이었다. 이후 2년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부역자’들은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따르면 1만 명을 헤아린다. 그러나 일부 우파 언론은 10만 명, 역사학자들 가운데는 4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프랑스 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매년 전국적으로 1만6000∼1만8000건의 형사사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전후 법관 수가 줄었음에도 1년 4개월 동안 처리한 ‘부역사건’만 11만8000건이었다. 사학자 피터 노빅의 당시 판례 조사에 따르면 몽펠리에 지역에선 피고의 7%가 무죄 방면된 반면 캉에서는 25%가 무죄 방면됐다. 두에에선 실형 선고의 2%가 사형이었던 반면 디종에선 19%나 됐다. “이제 역사가 바로잡히고 있다”는 함성이 울려 퍼지는 건너편에선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정의구현인가” 하는 울분들이 터져 나왔다.

프랑스의 기자이자 작가인 아술린이 쓴 이 책에는 프랑스가 ‘전후 숙청’을 벌여야 했던 일과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던 혼돈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가 특히 초점을 맞춘 것은 프랑스 지식인들에 대한 과거 청산이다. 프랑스는 다른 분야 부역자들보다 문인 언론인 출판인들에게 엄벌을 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할과 책임이 막중했다는 점이다. 또 경제인들의 부역 증거는 회계장부와 계약서처럼 은밀히 보관하거나 쉽게 폐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지식인들의 부역 증거는 대부분 널리 공표된 인쇄물이어서 검찰이 확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합군의 상륙을 막는 ‘대서양 장벽’을 실제 만든 부역 건설업자들보다, “영국의 속국이 될 수 없다”며 이의 필요성을 주장한 지식인들이 더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숙청 과정은 혼돈으로 이어졌는데 1944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벌어졌던 대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와 알베르 카뮈의 논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리아크는 당시 예순 살로 대(對) 독일 저항운동을 펼친 지하신문 ‘프랑스 문예’에 참여했지만 전후 프랑스 우익을 대변하는 ‘르 피가로’지 논설을 통해 “기독교적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학살자와 희생자가 서로 (죽음의) 쳇바퀴를 돌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바란다”는 게 요지였다. 모리아크는 특히 사형 선고를 받은 작가 앙리 베로의 재판정에 나가서 “독일군과 만나 보지도 않았던 그를 어떻게 적과 결탁했다고 기소할 수 있느냐”며 증거의 부실과 오류를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카뮈는 전쟁 동안 저항 지식인들의 구심점이었던 지하신문 ‘투쟁’에서 “나는 모리아크를 인간으로서 존경하지만 정의를 좌절시키는 자비는 거절한다”고 못 박았다.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여성 작가도 카뮈를 지지했다. ‘지식인은 자기가 쓴 글자 한 자에도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들의 말은 절대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숙청과정은 재판의 부실함과 형량의 지나친 편차, 숙청을 정치적 라이벌 제거에 이용한 세력들의 불순한 의도 등으로 얼룩졌다. 결국 카뮈마저도 1945년 8월 “숙청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 역겹다. 사태가 추악하게 발전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카뮈는 (숙청이) 완벽한 실패라고 판단했다’고 지은이는 쓰고 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 여당도 프랑스의 ‘과거청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 같다. 원제는 ‘L'`epuration des Intellectuels’.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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