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신춘문예]문학평론 ‘생의 저인망식…’ - 조강석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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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이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한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은 자연 전체의 질서와 우리네 삶의 세계의 구체적 현상들의 관계, 그리고 그것이 낳는 ‘난감함’에 주목할 때 요체가 파악되는 시집이다. 저 자명한 질서에 의해 운용되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시시각각 감지해내는 동시에 그 세계에 내접한 삶의 세계의 광막한 슬픔을 꿰뚫어 보는 이 예민한 시인은 두 세계의 낙차를 견디기 위해 수직적 초월을 택하는 대신, 고통이자 열락인 ‘진흙 천국’ 횡단을 택한다.

그는 삶이란, 그 어떤 윤리적 당위나 보편적 원리도 없이 그저 생사성식(生死性食)의 기운이 들었다 빠지며 ‘부풀고 꺼지고 되풀이’하는 ‘물집’과 같은 것일 뿐이며 이 생사성식의 기운이 넘나드는 우리의 몸이야말로 오히려 세계의 시원(始原)임을 보여주고 있다. ‘왜 이렇게 가슴 뛰느냐고’ 라는 시는 ‘고통의 은총’(마라)이라는 화두를 통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이로 하여금 “왜 이렇게 가슴 뛰느냐고, 왜 이렇게 행복하냐고” 묻게 만드는 이 ‘어이없는’ 감각의 열락. 여기에 한 비밀이 담겨있다. ‘아이스크림’의 미감이 가져다 줄 손 앞의 쾌락과 예견된 인공배설의 고통 앞에서 오히려 그 고통을 제쳐두게 만드는 이 구체적 감각의 열락, 여기서 시인은 찰나적으로 생의 본질을 보고 있다.

이런 태도는 결국 어떤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질서가 있어 그것들이 구체적 현상들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이라는 것이 구체적 현상들의 종국에 있는 것이라는 태도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때, 시 쓰기란 현상들 너머가 아니라 현상들의 내륙에 있는 지평을 더듬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컨대, 이성복의 시 쓰기란 생의 저인망식 구인을 위한 구체성으로의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동곡’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시들에서, 우리의 감관에 와 닿으며 몸 지각에 직접 호소하는 사물들과 생활 세계의 ‘강자’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관찰한다. 이렇게, 몸 지각의 전면적 개방을 요하는 ‘범성애적 충동’을 통해 구체적이고 단단한 것들을 답사해가며 세계의 내적 관계망을 형성해 갈 때, 비로소 시인은 비가시적인 보편을 향한 수직적 초월에 버금가는 가시적인 현상들의 수평적 ‘연대’를 이 세계 내에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시인이 ‘몸부림’의 테두리 내에서 슬픔을 가누는 방식이다.

시인이 ‘동네 잔치판 빼놓지 않는 마당발’처럼 쉬지 않고 구체적인 것들로의 저인망식 ‘물질’을 감행하는 것은, 저 스스로 아무 목적 없이 부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삶을 구인하여 가까스로 ‘속정 깊은 생’으로 바꾸어 ‘진흙 천국’에 대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것이 형이상학에 시위하는 시의 위의(威儀)임은 물론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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