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디지털 이젠 싫어”…IT발달에 사생활 제약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8시 02분


코멘트
태평양의 박모 부장(51)은 요즘 국내는 물론 해외출장도 가기를 꺼린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이제 출장은 고유의 출장 업무 외 사무실 업무도 동시에 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휴대전화 e메일 메신저 화상전화 등이 도입되면서 “출장 때문에 사무실 업무를 할 수가 없다”는 핑계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박 부장은 “바깥에서도 회사 전산망에 접속하면 회사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고 메신저로 본사 상사들과 끊임없이 의견교환을 하기 때문에 상사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날로 강화되는 노동 강도=7월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각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업무 집중도를 높이라고 채근하고 있다. 그 수단은 IT가 제공한다.

삼성네트웍스의 김모 대리(30)는 ‘메신저 혐오증 환자’다. 출근과 함께 컴퓨터를 켜면 자동으로 김 대리의 출근이 메신저로 대화상대에게 보고 된다. 대화상대는 같은 팀원들.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잠시 비우면 상사가 “어디를 다녀왔느냐”고 묻는다. 성격이 깐깐한 상사를 만나면 힐난까지 당한다. 김 대리는 “메신저 때문에 책상 앞을 벗어나기 힘들다”며 “항상 긴장한 상태로 업무를 보다 보면 퇴근 무렵에는 온몸에 진이 빠진다”고 말했다. ▽직장에 사생활은 없다=LG CNS는 최근 ‘U-플래너’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모든 임직원은 일정관리 소프트웨어인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을 입력한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5800여 명의 임직원 모두가 서로의 일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상사들이 자신의 업무 스케줄을 알기 때문에 다른 핑계를 대고 개인적인 일을 보기 어렵다.

요즘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이 e메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기술보안이 중요한 하이테크 기업에서는 일정량 이상의 e메일 발송이 차단돼 있고 직원들의 e메일을 감시하는 보안프로그램을 대부분 운영하고 있다. 개인노트북 사용을 금지하는 회사도 많다.

회사원 노모 대리(32)는 “회사가 컴퓨터에 관리프로그램을 설치해 내가 배경화면을 바꿔도 다음 날이면 원상복귀 될 정도로 간섭이 심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