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감독

  • 입력 2004년 12월 9일 16시 23분


코멘트
가난한 연인인 병석(오른쪽)과 재경. 그들에게 행복은 다가가려고 할수록 점점 멀어져가는 꿈이다.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가난한 연인인 병석(오른쪽)과 재경. 그들에게 행복은 다가가려고 할수록 점점 멀어져가는 꿈이다.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우리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마이 제너레이션’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이것이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내면을 담고 있는 풍경인가. 마음이 참담해진다. 영화평론가가 됐든 영화기자가 됐든 이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느낌이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병석은 결혼식 비디오 촬영도 하고, 갈비집에서 숯불을 피우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도로변에서 성인용품을 팔기도 하면서 막막하게 지내며 살아간다. 그의 일상은 늘 무겁고 힘들다. 이런 사정은 그의 애인인 재경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간신히 사채업자 사무실에 취직을 하지만 하루 만에 잘리고 만다. 성격이 우울해 보인다는 것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겠다며 시작한 홈쇼핑 영업에서도 재경은 사기를 당하고 만다.

현실이 잔혹하면 잔혹할수록 사람들은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찾는 이유도 그런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극장 안에서의 두어 시간 동안만큼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루해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석 감독은 그것 참 웃기는 얘기라며 딱딱하고 화난 표정을 짓는다. 영화 속 병석과 재경의 모습 곧 ‘노동석의 제너레이션’은 극장도 맘 놓고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이 한가롭고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흔히들 386 혹은 486 세대라고 명명되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자의적이었고, 또 얼마나 오만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은 반성케 한다. 이들은 흔히 1980년대의 상황을 최악의 고통으로 내세우며 살아온 세대다. 거기에 더해 일부는 좌파 상업주의로 변질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대의 문제에 관한 한 그 어느 때건 젊은 세대가 늘 그 한가운데에서 피폭당하고 있음을 ‘마이 제너레이션’은 웅변하고 있다. 80년대에는 주로 정치적 억압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이들을 억누른다.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의 시대. 그 속에서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껴안고, 보듬고, 다독이며 가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에 미래와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영화는 방점을 찍어가며 강조하고 있다.

노동석 감독

하루 만에 직장에서 잘리고 돌아온 재경을, 병석은 자신이 일하는 음식점으로 끌고 들어가 밥을 먹인다. 그는 재경이 침울해 할 때면 항상 어른이 아이를 달래듯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곤 그녀에게 조용히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고 말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이 분명 엄청난 우울증을 유발하는 작품이긴 해도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 희망이 느껴지는 것은 두 젊은 연인의 모습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병석과 재경은 투명하고 맑아 보인다. 그래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려 한다는 것, 서로를 배려하려 한다는 것, 더불어 살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살아가려는 지금 젊은 세대의 의지를 대변한다. 그런 면에서 노동석이 그려낸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은 결코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는 희망의 세대다.

독점기업이라고 비난받는 CJ엔터테인먼트의 돈 3000만원과 6명의 스태프만으로 노동석 감독은 올 한해 가장 소중한 발견인 영화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가 불러올 영화계 안쪽의 파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노동석과 그의 영화는 마치 홍상수의 프롤레타리아 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비하면 홍상수의 작품은 지식인들의 한가롭고 쓸데없는 자기변명처럼 느껴질 정도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영화는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카메라는 과연 무엇을 찍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우리는 영화를 통해 과연 무엇을 얻으려고 애써야 하는지를 곰곰이 고민하게 만든다. 지난 주말 예술영화 전용관 세 곳(서울 하이퍼텍 나다와 씨어터2.0,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단출하게 개봉됐다. 현재까지는 극히 소수의 관객들만 만나고 있는 셈이다. 내년 2월 베를린영화제 영포럼 부문에도 초청됐다. 15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