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홍어… 이맛 모르면 세상 헛산 것이여

  • 입력 2004년 11월 4일 16시 30분


코멘트
《홍어의 고향 흑산도는 뭍에서 멀다. 목포에서 약 90km.

지금은 쾌속선을 타면 뱃길로 두 시간 거리지만 일반 여객선은 5시간이 더 걸렸다.

그 옛날 돛단배를 타고 오가던 시절엔 기상 상태에 따라 며칠씩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변변한 냉장 설비가 없어섯 어부들이 애써 잡은 생선은 어시장까지 가기전에 상해 버리기 일쑤였다.


개중에 맛이 갔어도 먹고 배탈이 안 나는 생선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홍어였다.

삭은 홍어는 이후 별미를 찾는 미식사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됐다.

이것이 흑산도에서 들은, 홍어를 삭혀 먹게 된 유래다.》

○ 고통에서 쾌감으로

잘 삭은 홍어를 난생 처음 접한 사람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홍어가 상에 오르는 순간 어린 시절 맡았던 재래식 화장실 냄새를 떠올리며 질겁한다. 이걸 먹으란 말인가. 아니 사실은 식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후각은 이미 비상이다. 권하는 대로 숨을 참은 채 억지로 입에 넣으면 더한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후각 미각 촉각이 곤두서고 세포를 하나하나 자극하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면서 코가 뻥 뚫린다. 제대로 삭은 홍어로 만든 찜을 먹다가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기도 한다. 홍어를 처음부터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괴로움의 근원은 암모니아다. 홍어의 몸에 있는 요소가 발효되면서 미생물에 의해 암모니아로 바뀌는 것이다. 전라도 말로 오가리(항아리)에 짚을 깔고 홍어를 올려놓고 발효될 때까지 기다리면 저절로 발효가 된다. 때로 강렬한 맛을 위해 두엄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보통 여름에는 하루나 이틀, 가을에는 5, 6일 정도 걸린다. 요즘엔 저온으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냉장고를 쓰는 경우가 많다.

괴로움을 견디고 먹다보면 어느 순간 쾌감으로 바뀐다. 자학과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 비로소 찾게 되는 그 즐거움, 고통이 큰 만큼 쾌감도 크다. 김치나 치즈 같은 발효식품이 그렇듯 홍어 역시 중독성이 있어 한 번 맛 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 ‘홍어 먹을 줄 아는’ 사람들끼리 은근한 동지감도 생긴다.

○ 홍어 먹기

홍어회,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것을 삼합이라고 부른다.(촬영협조 흑산도 성우정)

‘1 코, 2 날개, 3 꼬리.’

홍어에서 맛있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면 그렇다는 얘기다. 홍어를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그냥 살을 먹는 것도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홍어 애(간)도 단골들에게만 내놓는 별미다.

홍어는 버릴 곳이 없다. 살은 회로 먹고 뼈와 내장은 찜이나 탕을 끓이는데 쓴다.

홍어회는 소금을 찍어서 먹기도 하고 미나리를 넣고 초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한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얹어 먹는 삼합(三合)은 홍어 요리의 백미로 꼽힌다. 세 가지 이질적인 음식을 한꺼번에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김치와 돼지고기 맛이 먼저 느껴진다. 볼이 터지도록 우물거리며 씹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홍어 고유의 톡 쏘는 맛이 나기 시작한다. 홍어 뼈를 씹으면 씹을수록 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홍어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게 막걸리다. 시인은 ‘막걸리 한 사발에 홍어회 한 점, 그 홍탁이라는 유명한 전라도 음식을 아직 못 자셔 보았는가. 그랬다면 당신은 세상 헛산 것이여’(임보, ‘홍어에 관한 한 보고’)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칠레산과 흑산도 홍어를 구분할 수 있을까. 흑산도 현지에서 물어보니 썰어놓은 것을 눈으로 봐서는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의 살은 선홍색 빛을 띠고 수입산은 그렇지 않다고도 하는데 원래 흑산도 홍어도 오래 삭히면 붉은 빛이 점점 가신다.

입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흑산도에서 성우정 식당(061-275-9003)을 운영하는 박춘자씨(63)는 “뭍에 나가서 칠레 홍어를 먹어봤는데 퍼석거려서 한 점 먹고 말았다. 흑산도 홍어의 찰진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의 감각으로 둘을 구분하는 건 흑산도 홍어를 이미 여러 번 먹어 본 사람이나 가능하지 구경도 못 해본 범인(凡人)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다.

○ 어디서 먹나

서울 시내에도 홍어로 유명한 식당이 꽤 있다. 국산 홍어 한 접시에 10만원 정도 한다.

동대문구 답십리에 흑산도 수협 회타운(02-2217-8244)이 있다. 흑산도 홍어를 믿고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흑산도 수협(061-246-5323)에 연락하면 집에서 택배로 홍어를 구입할 수도 있다.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신안촌(02-738-9970)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의 음식 맛을 재현했다는 평을 받는 곳. 기본적인 홍어 요리 외에도 홍어 살에 튀김옷을 입혀 부친 전유어가 별미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동 골목에 있는 목포집(02-737-9322)에서도 잘 삭은 홍어회와 삼합을 맛볼 수 있다. 홍어 안주에 막걸리를 마신 후 묵은 김치와 숭덩숭덩 썬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로 마무리하면 깔끔하다.

종로구 권농동 순라길(02-3672-5513)도 미식가들 사이에 잘 알려진 홍어집. 손수 빚은 막걸리 맛도 그만이다.

노량진수산시장 부근의 여수식당(02-813-1952)은 찾기는 어렵지만 정재계에 단골이 많기로 소문난 집이고 신설동의 홍어회집(02-2234-1644)도 역사가 오래된 집이다.

글=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사진=강병기기자 arch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