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발굴, 뒤에선 무슨일이?

  • 입력 2004년 10월 17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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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문화재 발굴조사가 한 해 1000건에 이르는 상황에서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발굴조사의 경우 발굴현장 보존 판정이 나는 경우는 1% 미만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문화재 파괴다. 그러나 발굴조사의 급증과 함께 발굴조사전문기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건설업체와 결탁한 부실 발굴조사, 비정규직 연구원 고용, 졸속보고서 남발, 발굴보고서 늑장 제출 등의 문제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15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긴급진단, 발굴조사의 현실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어 이 같은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1999년 6월 모든 건설현장에서 지표조사를 의무화하면서 발굴조사도 늘어났다. 1999년 331건에 불과했던 발굴조사는 2002년 500건을 넘어섰고, 올해 1000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발굴조사가 급증하자 발굴조사법인도 덩달아 늘어났다. 1994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처음 설립된 이후 지난해 무려 7곳의 발굴전문법인이 신설되는 등 모두 23개 기관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이들 전문법인이 적은 연구 인력에 비해 너무 많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504건의 발굴조사 중 390여건을 전문법인들이 차지한 반면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각 대학 박물관 등 94개에 이르는 기존 발굴기관은 나머지 100여건의 발굴조사만 처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발굴조사가 수익논리를 따라가면서 마구잡이식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발굴전문법인은 건설업체와 결탁해 중요 유물을 파괴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또 전문법인 대표가 문화재위원이나 학계 원로일 경우 발굴조사 수주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모셔가려는 로비도 치열하다.

올해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고질적인 늑장 보고서다. 발굴조사를 마친 뒤 최장 4년까지로 정해진 보고서 제출기한을 지키지 못한 발굴조사가 29개 기관, 102건에 이른다. 발굴조사보고서 미제출은 결국 현장의 문화재만 파괴하고 이를 은폐하는 범죄행위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에서는 보고서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는 기관에 대해 징역형까지 도입하려다 고고학자들의 반발에 부닥쳐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대부분 대학 연구기관이다.

발굴조사전문법인의 경우는 오히려 졸속 보고서가 문제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전문법인의 경우 하나라도 더 많은 발굴사업을 따내기 위해 문화재청에 제출할 보고서는 형식만 갖춰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발굴보고서의 내용을 심의할 문화재청의 전문 인력은 태부족인 실정이다.

이상길 경남대 사학과 교수와 조유전 동아대 초빙교수는 15일 공청회에서 일종의 발굴조사 전문 공사(公社)를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매장문화재는 공공자산이기 때문에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사가 발굴조사를 독점하면서 필요할 경우 대학기관을 참여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발굴조사기관 연구원의 신분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재 난립한 발굴전문기관을 통폐합해야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발굴조사기관에 대해 등록제를 적용해 일정 인원과 발굴유물 수장 공간을 확보한 경우에만 발굴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발굴조사원에 대해서도 국가자격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발굴조사 보고서에 대해서도 제출 시한뿐 아니라 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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