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村賞 수상소감]좋은 세상 만들기 외길… 큰 발자취…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06분


코멘트
《제18회 인촌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13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교육, 인문사회문학, 자연과학, 산업기술, 공공봉사 등 5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사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심사는 부문별로 전문가 4, 5명이 참여한 가운데 3개월간 공정하게 진행됐다. 수상자 다섯 분의 삶과 공적, 수상 소감 등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인촌상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교육부문-鄭義淑씨(이화학당 명예이사장)▼

“한국 여성교육을 위해 애쓴 선배들이 닦아 놓은 터전에 작은 힘을 보탰을 뿐입니다. 여성 교육계 전체를 격려하는 큰상으로 생각합니다.”

교육부문 수상자인 정의숙(鄭義淑·74·사진) 이화학당 명예이사장은 수상 소감을 이같이 피력하면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사회에 기여하는 전문 인력이 되라고 늘 당부했다”며 “이런 소망이 조금씩 실현되는 것 같지만 흡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올라갈수록 여성의 입지가 좁아지고 편견도 많아요. 요즘 출산율이 낮다고 우려하지만 육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됩니까.”

그는 총장 재임 때 문리대에서 자연과학대를 독립시켰다. 초긴축 재정으로 적자재정을 흑자로 만드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유능한 교수들을 영입하고 새 건물을 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교양교육에서 연구중심 대학으로 탈바꿈하는 질적 기반을 닦았다. 그는 이사장 시절에는 총장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등 교내 개혁을 주도했다. 관례상 종신직인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교수와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총장 취임 1년도 안돼 교수 5명이 계엄군에 붙잡혀 갔다. 계엄사령부를 찾아가 “꼭 필요한 분들이니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돼 총장에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에 복귀했다. 그때 학교를 떠난 교수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윤후정(尹厚淨) 이화학당 이사장은 그를 “내유외강(內柔外剛)의 교육자”라고 평가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능력 사회일수록 인간적 성품을 반성하며 신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적=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29세에 교수로 임용됐다. 미국 애즈버리 신학교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性)의 정치학’ 등의 역서가 있다.

1979∼1990년 이화여대 총장을 3번 역임했고 2000년까지 이화학당 이사장을 맡았다. 아세아여성협의회(AWI) 이사,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인문사회문학부문-金忠烈씨 (고려대 명예교수)▼

“뜻밖의 상을 받고 보니 ‘내가 세상을 등지고 살아왔을 뿐 세상은 나를 등지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20년은 더 공부해야 할 사람입니다. 너무 큰 상을 주시는 바람에 힘겹게 가는 길에 ‘빚짐’을 더 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인문사회문학부문 수상자인 김충렬(金忠烈·73·사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내 동양철학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 1996년 고려대 교수직을 정년퇴직한 뒤 고향인 강원 원주시 문막읍에 칩거하면서 저술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중학생 때 오대산 상원사로 출가했다가 방한암 선사에게서 “넌 중 될 놈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하산했던 그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의 학자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6·25전쟁 참전을 비롯해 7년여의 군복무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불혹 때 첫 책 ‘시공여인생(時空與人生)’을 냈는데 스승인 국립대만대 팡둥메이(方東美) 교수께서 ‘너무 이르다. 예순은 넘겨서 쓰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후 교직에 있는 동안은 공부와 강의에만 전념했습니다.”

그가 키워낸 제자 중 국내외 교수만 50여명에 이른다. 스승의 말씀을 좇아 예순을 넘겨서 저술활동에 들어간 그는 정년퇴직 후 ‘중국철학사1’ ‘노자 강의’ 등을 줄기차게 펴내고 있다. 중국철학사는 일곱 권으로 예정돼 있고, 내년에는 ‘장자 강의’를 출간할 예정이다.

“평생 공부만 했지만 고관대작이나 재벌이 된다 해도 맛볼 수 없는 희열을 얻었습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미련이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갈수록 돈과 권력을 중시하는데 학문을 통해 ‘유아독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공적=일찍이 한학에 눈을 떠 노장(老莊)사상에 심취했다. 만학으로 유학을 떠나 중국철학의 대가인 국립대만대 팡둥메이 교수의 수제자가 됐다. 한국의 중국유학 및 노장철학을 중국 본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다. 중국철학사의 맥을 서술한 ‘중국철학산고’(1, 2권)는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작으로 꼽힌다. 올해에는 ‘김충렬 교수의 노자강의’를 출간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자연과학부문-任志淳씨(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마침 올해가 안식년인데 수상 소식을 듣게 돼 연구 의욕이 더욱 샘솟고 있습니다.”

자연과학부문 수상자 임지순(任志淳·53·사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대뜸 ‘안식년’ 얘기를 꺼내며 소감을 밝혔다. 그를 ‘세계적인 탄소나노튜브의 대부’로 만든 연구가 바로 7년 전 안식년 시절에 이뤄졌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던 것.

1996년 가을 임 교수는 “획기적인 연구를 하겠다”며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버클리대로 훌쩍 떠났다. 연구대상은 탄소나노튜브. 탄소(C) 6개가 육각형을 이룬 채 서로 연결돼 있는 빨대 모습인데 지름이 머리카락 10만분의 1 굵기인 나노미터(nm·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수준.

임 교수는 탄소나노튜브가 한 가닥일 때는 구리보다 100배나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이지만 다발로 묶여있으면 ‘반도체’ 성질을 가진다는 점을 처음 밝혔다. 이론대로라면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집적도가 1만배 이상에 이르는 새로운 반도체가 탄생할 수 있다. 이 연구논문은 1998년 1월 영국이 발행하는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임 교수는 이론만 파고드는 물리학자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업체와 공동으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전력이 기존의 3분의 1만 소모되면서 좀 더 얇은 대형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안식년에도 획기적인 연구를 구상하고 있어요. 단백질이나 유전자 같은 생체 내의 분자를 반도체 소자로 개발할 생각입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과학자를 제치고 인촌상을 받게 됐으니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공적=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86년부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온초전도 현상을 규명하는 핵심 이론과 탄소나노튜브 연구로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과학상’(1995) ‘올해의 과학자상’(1989)을 수상하고 ‘제1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2002)으로 선정됐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산업기술부문-金雙秀씨(LG전자 부회장)▼

“같이 일해 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상 받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해 줄까 부담스럽습니다. 전자 분야에서 묵묵히 일만 해온 삶을 높이 평가해 줘 감사할 뿐입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에서 만난 LG전자 최고경영자(CEO)인 김쌍수(金雙秀·59) 부회장의 수상 소감은 담담하고도 짧았다. ‘실천 없는 공론(空論)’을 배격하는 경영철학이 그의 말투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김 부회장은 내수 중심의 기업이던 LG전자를 수출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은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빛을 발했다. 많은 전자업체가 비틀거릴 때 LG전자는 수출을 통해 새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

“한 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시장에서 나고 올해 말이면 가전부문 세계 3위에 진입할 정도로 LG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전 부문을 포함해 2010년까지 세계 전자·통신업계에서 ‘톱3’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김 부회장의 주도로 1996년부터 이뤄진 ‘6시그마(불량률을 제품 100만개당 3.4개 이하로 줄이는 품질관리)’ 경영은 LG전자를 매년 매출이 20%씩 성장하는 고(高)성장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원천기술이 떨어지는 한국의 유일한 경쟁력은 생산성 향상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외 기업 환경과 관련해 김 부회장은 “기업인에게 어렵지 않을 때는 없다”면서 “‘남의 탓’할 시간에 ‘내 탓’을 하며 혁신마인드를 갖고 제품과 품질의 차별화에 나서는 것이 참다운 기업인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적=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1969년에 LG전자의 전신(前身)인 금성사에 입사했다. 98년 부사장, 2001년 사장을 거쳐 지난해 1월 부회장이 됐다.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93년 석탑산업훈장, 2000년에는 동탑산업훈장과 ‘6시그마 혁신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올해 6월에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뽑은 ‘아시아의 스타’로 선정됐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공공봉사부문-韓明子씨(청원 금관보건진료소장)▼

“상대적으로 의료환경이 열악한 산간벽지나 외딴섬 등에서 주민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는 동료 보건진료원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공공봉사부문 수상자인 충북 청원군 금관보건진료소 한명자(韓明子·43·사진) 소장은 23년 전 보건진료원 교육을 받은 뒤 첫 근무지에 부임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수상소감을 말했다.

별정직 공무원인 ‘보건진료원’은 간호사 자격증 소유자로 6개월간 별도의 교육을 받은 뒤 낙도나 탄광촌 등에서 근무하는 이들로 현재 전국에서 19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 소장은 “1981년 전국 방방곡곡으로 발령받았던 보건진료원 1기생 40명이 농촌의 의료환경을 현재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주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외상 치료나 약 처방 등을 넘어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수준과 의식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제까지 주사를 놓고, 약을 조제하는 수준에만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농촌 주민도 도시민처럼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1차 건강관리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보건진료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매달 관내 노인 200여명에게 무료로 목욕서비스를 하고, 매주 두 번 관내 9개 마을을 돌며 ‘맞춤 건강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겨울 농한기 12주 동안은 혈압이 높은 주민을 위해 ‘혈압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알려주고 주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한 소장은 무료 노인보호시설 운영 및 호스피스 사업을 계획 중이다.

“지금까지 한 일에 비해 너무 큰 상을 받게 됐습니다. ‘처음 산골마을로 발령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공적=1981년 청주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간호대에서 보건진료원 1기 교육을 받은 뒤 23년째 충북도 내 산간벽지에서 주민 건강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진료와 처방 등 기본적인 의료활동 외에도 △농한기 고혈압 자기관리 프로그램 △노인 목욕서비스 △치매노인 맞춤 건강교육 등을 도입해 실시 중이다. 10월 초 노인수용시설을 완공해 목사인 남편과 운영할 계획이다.

청원=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제18회 인촌상 심사위원▼

▽교육부문 △위원장=김병수(金炳洙) 포천 중문의대 총장 △위원=김기영(金基永) 연세대 교수, 정동윤(鄭東潤) 고려대 교수, 이현청(李鉉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인문사회문학부문 △위원장=김우창(金禹昌) 고려대 명예교수 △위원=유종호(柳宗鎬) 연세대 특임교수, 이태수(李泰秀) 서울대 대학원장, 정두희(鄭杜熙) 서강대 교수

▽자연과학부문 △위원장=한민구(韓民九) 서울대 공대 학장 △위원=이세경(李世慶)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김유승(金有承) KIST 원장, 이순보(李淳甫) 성균관대 교수, 김두식(金斗植) 연세대 교수

▽산업기술부문 △위원장=임관(林寬) 삼성종합기술원 회장 △위원=박원훈(朴元勳)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민석기(閔碩基) 경희대 교수, 곽병만(郭柄晩)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공공봉사부문 △위원장=김상균(金尙均) 서울대 교수 △위원=유승흠(柳承欽)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전봉윤(全鳳侖) 서울시 재활협회 상임부회장, 정영순(鄭永順) 이화여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