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대산문화 ‘골짜기에 빠진 세대’ 중견작가 4人 고해성사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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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에서는 1950년대에 태어난 일군의 작가들을 ‘골짜기에 빠진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경리 이문열씨 등 봉우리처럼 일어선 앞선 세대에 비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지함을 무기로 가진 ‘문학청년’의 마지막 세대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현재 우리 문학계의 중견이다.

문학교양지 ‘대산문화’ 가을호는 이들 중 대표 작가 네 명에게 역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현재의 우리 문학’을 지켜보는 치열한 내면 고백을 들어보았다.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대하소설 ‘봄날’을 쓴 임철우씨는 “지난 10여년의 절반 이상을 이 소설을 쓰는 데 바쳤지만 탈고하고 나자 주변에선 ‘아직 그 얘기냐’며 한심스러워 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교수가 된 그는 강단생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문학 정신을 진지하게 강의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학생들은 나를 ‘코미디 단막극에 출연한 광신적인 문학 전도사처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 판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온 세상이 천박한 물신의 늪으로 곤두박질쳤구나. 작가, 교수들조차 날더러 한심하다고 혀를 찬다. 아, 전혀 본 적 없는 꽤 깊은 골짜기가 앞에 서 있구나.”

전업 작가인 강석경 이순원씨는 ‘다른 작가들처럼 (안정을 찾기 위해) 차라리 대학 교단으로 갈까’ 하는 유혹을 떨쳐 버리려는 각오도 밝혀놓고 있다.

“강의에 에너지를 쏟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려면 문학은 애정결핍증의 자식처럼 돌아서버릴지도 모른다.”(강석경) “많이들 대학으로 가는 엑소더스 속에서도 ‘독립군’으로 남아 참호 속에 꿋꿋이 버티는 나의 문학적 길동무들과 함께 하겠다.” (이순원)

특히 강씨는 “작가라면 사상을 담을 그릇으로 장편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단편소설에 주는 수많은 문학상들을 보라. 문예지나 작가들이나 역시 손쉬운 단편에만 매달려 있다”고 문학계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문학의 위기론에 대한 반격도 치열하다. “선생님 세대의 작가들이 기대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대산문화’측의 질문에 이순원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학 2, 3년 하다 그만 두는 거 아니다. 우리는 이제 고작 사십대다. 문학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자기 앞의 긴 시간을 가지고 한다. 신인 때부터 하루 열두 번씩 ‘문학의 위기’ 소리 들으며 컸다. 우리는 문학에 대해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세대다. 좀 더 기다려라.”

이승우씨는 네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봉우리의 삶과 문학이 있듯 골짜기의 삶과 문학이 있다. 골짜기는 낮은 게 아니다. 봉우리는 높고 골짜기는 깊을 뿐이다. 그것들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골짜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다. 그러니 골짜기에 빠졌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지각 변동은 늘 일어난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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