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트로이’…미술로 읽어낸 트로이 영웅의 숨결

  • 입력 2004년 6월 4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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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30년경 엑제키아스가 만든 항아리. 아킬레우스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다(위). 사진제공 루비박스. 현재 극장가에서 상영중인 영화 ‘트로이’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 동아일보 자료사진
기원전 530년경 엑제키아스가 만든 항아리. 아킬레우스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다(위). 사진제공 루비박스. 현재 극장가에서 상영중인 영화 ‘트로이’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 동아일보 자료사진

◇트로이/수잔 우드포드 지음 김민아 옮김/252쪽 1만1900원 루비박스

영화 ‘트로이’가 개봉 열흘 만에 전국에서 관객 220만명을 모았다.

트로이신화는 호메로스의 시, ‘일리아드’가 원작이다. 서구인들의 필독 고전서이지만 고어 운문체에다 등장하는 이름들이 많고 낯설어 그 유명세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 ‘트로이’는 어렵고 지루한 트로이 신화를 고대 미술과 문학으로 쉽게 읽기를 시도한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 로마의 신화와 역사, 문학, 철학, 종교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술품들을 읽어내는 미술사학자로 런던대와 대영박물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현존하는 고대 서사시와 미술 작품들을 재료로 트로이 신화를 복원해 냈다.

저자는 호메로스를 비롯해 아테네의 비극시인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오비디우스, 플리니우스, 베르기니우스 등의 문학과 고대 그리스의 벽화, 항아리, 조각품들에 남아 있는 150여 컷의 그림을 통해 영웅들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원전 530년경 엑제키아스가 만든 암포라(몸통이 불룩하고 목이 긴 항아리)에 그려진 그리스 장군 아킬레우스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솜씨는 이렇다.

기원전 1세기에 제작된 로마시대 은잔. 적장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맞추는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의 모습이 부조로 표현됐다. 사진제공 루비박스

‘이 작품에는 아킬레우스가 펜테실레이아의 목에 창을 겨누면서 아름다운 적에게 사랑을 느끼는 극적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아킬레우스는 펜테실레이아를 죽이면서 사랑을 느낀다. 이러한 ‘사랑과 죽음’의 로맨틱한 결합은 화가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소재였다. 펜테실레이아는 도망치려 애썼으나 결국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들어 아킬레우스를 쳐다보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 있는데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자신을 죽인 아킬레우스를 응시하고 있다. 엑제키아스는 죽이는 자와 죽음을 당하는 자가 마주보면서 둘 사이에 곧 사그라질 사랑의 감정이 싹튼 것을 포착한 것이다.’

젊은 아킬레우스 앞에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꿇어앉아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맞추는 장면은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 은잔에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그 어떤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하였다. 나의 입술로 내 아들을 죽인 원수의 손에 키스를 했다’는 ‘일리아드’에 나오는 짤막한 문장을 장중한 분위기로 시각적으로 재현한 작품을 통해 저자는 미술과 문학의 넘나들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설명한다.

미술사 책이지만 미술품으로서 그림의 의미나 양식 분석에 치중하기보다는 그림을 통해 당시의 문학과 신화, 역사, 유머까지 읽어낸다. 원제 ‘The Trojan War in Ancient Art’(1993년).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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