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우리 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3>토문강

  • 입력 2004년 4월 2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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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화강 지류인 우다오바이허.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토문’은 이 우다오바이허의 상류인 헤이스허로 추정된다. 헤이스허의 물길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어 북한 쪽에 있는 백두산정계비터까지 이어진다.   -안투현=특별취재팀
쑹화강 지류인 우다오바이허.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토문’은 이 우다오바이허의 상류인 헤이스허로 추정된다. 헤이스허의 물길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어 북한 쪽에 있는 백두산정계비터까지 이어진다. -안투현=특별취재팀
난간이 절반쯤 부서진 이름 모를 다리. 그 아래로 쑹화(松花)강의 지류인 우다오바이허(五道百河)가 흐른다. 족히 6∼7m는 돼 보이는 강폭에 수량도 제법 많아 발원지는 아직 먼 것 같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헤이스허(黑石河)로 이어진다고 하나 차를 이용해 갈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가이드 생활 십수년에 이런 데 오자는 손님은 처음 봤습니다.” 여정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현지인 가이드가 너스레를 떤다.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에 한국과 중국의 동쪽 경계로 새겨진 ‘토문(土門)’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3월 말인데도 강기슭엔 눈이 수북했다.

○300년 묵은 국경분쟁

1712년 조선과 청이 합의해 세운 백두산정계비엔 ‘서쪽으로는 압록, 동쪽으로는 토문을 경계로 삼는다(西爲鴨綠 東爲土門)’고 나와 있다. 그 후 토문이 어디인지가 줄곧 논쟁거리가 됐다. 170여년이 지난 1880년대엔 외교문제로 비화돼 두 차례 국경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조선측은 쑹화강 상류가 토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청측은 중국어 발음이 같은 두만(豆滿)강의 이칭(異稱)이라고 맞섰다. 토문이 쑹화강 상류라면 간도(間島)지역은 물론 연해주 일부까지 조선 땅이 된다. 그러나 회담 중단으로 시비가 가려지지 않은 채 다시 120년 가까이 흘렀다.

취재팀은 현지답사에 앞서 한국과 중국 현지의 역사학자 지리학자들과 함께 토문을 그린 고지도를 검토하고 최근 중국과 북한이 펴낸 지도와도 비교해 봤다. 현지인 탐문 취재와 역사문헌 조사도 거쳤다. 그 결과 우다오바이허의 지류인 헤이스허가 토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헤이스허 가는 길

1712년 국경 정계(定界)에 나섰던 청의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은 국경으로 삼은 두 강의 분수령에 정계비를 세우고 물길이 불분명한 곳엔 돌과 흙으로 담을 쌓게 했다. 그 정계비와 토퇴(土堆) 석퇴(石堆)가 있던 자리는 모두 북한 쪽에 있어 취재팀은 중국 쪽에서 되짚어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물길의 모양은 지도마다 조금씩 달랐다. 백두산에서는 목재 운반을 위한 임로(林路)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하천 주위의 도로도 명확지 않았다. 지도를 따라가도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일단 우다오바이허에서 백두산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을 찾았다. 쑹화강에서 우다오바이허가 갈라지는 지점의 ‘싼다오(三道)’라는 곳이었다. 거기서부터는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물길을 따라갔다.

강을 따라 올라가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 하천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모두 “쑹화강 상류”라고 대답한다. 우다오바이허라는 지리학적 명칭은 몰라도 물이 쑹화강으로 흘러드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싼다오에서 진흙탕길로 35km를 달려 작은 다리에 이르자 길은 끊겼다.

○토문은 두만강이 아니다

정계비는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중 하나인 백두봉에서 남동쪽으로 4km가량 떨어진 해발 2200m쯤 되는 지점에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두만강 지류가 보이지 않는다. 현지 지리학자 A씨는 “두만강의 지류 중 가장 북단인 홍토수(紅土水)조차 정계비터에서는 볼 수 없다”고 일러줬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지형도로 1986년 두만강 상류를 계측했던 한국하천연구소 이형석 소장도 “정계비 동쪽의 물은 두만강으로 흘러 동해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계비는 쑹화강과 압록강이 갈라지는 이분수령(二分水嶺)에 있으며 두만강 쑹화강 압록강이 갈라지는 삼분수령(三分水嶺)은 대연지봉”이라고 설명했다.

화산 지형인 백두산의 동쪽 사면은 밟으면 ‘버석버석’ 소리가 나는 부석토로 물이 땅 속으로 스며 흐른다. 그래서 토문은 지표면으로 흐르는 하천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다. 현지의 지리학자 B씨는 “목극등이 정계비터에서 동쪽으로 본 것은 물이 흐르지 않는 골짜기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1712년 당시 조선측 통역관으로 동행했던 김지남(金指南)의 ‘북정록(北征錄)’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목극등이 사람들을 시켜 자신이 지목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 보게 한 뒤 물길임이 분명하다는 보고를 받고 정계비터를 토문의 수원(水源)으로 정했다는 대목이다.

○토문은 쑹화강 상류에 있다

하지만 정계비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물길은 모두 쑹화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만약 목극등이 두만강을 경계로 정하고 싶었다면 정계비를 엉뚱한 자리에 잘못 세운 것이 된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해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 러시아의 연해주까지를 휘감아 흐르는 쑹화강. 그 상류는 서쪽부터 터우다오바이허(頭道白河)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싼다오바이허(三道白河) 쓰다오바이허(四道白河) 우다오바이허로 불린다. 헤이스허는 우다오바이허의 상류로 흘러 듣다.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의 국경회담에서 한 가지 사실만은 양측의 견해가 일치했다. 정계비와 토퇴, 석퇴를 따라가면 ‘황화쑹거우쯔’(黃花松溝子)가 나온다는 것. 당시 조선측 대표 이중하(李重夏)가 작성한 지도에도 ‘황화쑹거우쯔’가 명기돼 있다. 또한 청측 자료는 “비석에서의 거리가 90리다”고 밝히고 있다.

○토문이란 명칭은 실재한다

현재 지린성에서 쓰이는 지도와 1885년 이중하가 그린 지도를 비교해 보면 헤이스허와 황화쑹거우쯔가 위치나 물 흐름에서 흡사하다. 특히 중국의 지도나 지리서는 헤이스허와 정계비터를 점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는 물론 지표면으로 흐르지 않는 하천임을 나타낸 것이다.

2002년에 한국의 우진지도문화사가 펴낸 ‘최신북한지도’는 아예 우다오바이허를 ‘투먼강(土門河)’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영택 우진지도문화사 대표(한국 땅이름학회 고문)는 “북한에서는 지금도 우다오바이허를 토문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전했다.

백두산=특별취재팀

임채청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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