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조각가의 ‘정물화 유작’ 2점 첫 발견

  • 입력 2004년 4월 7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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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족드에 의해 햇빛을 본 고 권진규의 정물화. 시대분위기를 대변한듯 암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최근 유족드에 의해 햇빛을 본 고 권진규의 정물화. 시대분위기를 대변한듯 암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고 권진규(權鎭圭·1922∼1973)씨의 유작 두 점이 발견됐다. 권씨의 유족들은 7일 “최근 고인의 집을 정리하다가 다른 사람들 그림과 섞여있던 고인의 유화 두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2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3가 251의 13 권씨의 자택이 서울시 지정문화재(기념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작업실을 정리하던 중 이 작품들을 발견했다. 유족들은 “발굴된 작품들은 작업실 한 켠 고인이 평소 기거하던 방에 놓여 있던 것으로 1960년대 초반 고인에게 그림 수업을 받으러 다녔던 조카가 최종적으로 그의 그림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진 정물화 두 점은 1963∼65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모두 65.5X53cm 크기다.

두 점 다 탁자 위에 놓인 병과 그 위에 불을 밝힌 호롱불을 작가 특유의 선묘(線描)와 가라앉은 색조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형태적 예리함, 부수적인 요소를 생략한 간결미, 날카로운 조형감각 등을 읽을 수 있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발굴을 계기로 그동안 주로 ‘여인’과 ‘말’을 소재로 해온 고인의 유화작업에 ‘정물’이라는 새로운 화제(畵題)가 하나 추가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쉰한 살, 한창 정력적으로 활동할 나이에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는 생전에도 곡절 많은 삶으로 화제를 모았다. 스무 살 때인 1942년 미술 공부를 위해 도일(渡日)했으나 징용을 당해 1년이나 비행기 공장에서 강제 노역했고 다시 1년 동안 방공호에 숨어 살아야 했다.

광복 후 귀국했다가 1948년 다시 도일한 작가는 도쿄예술원을 거쳐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세계적 조각가 부르델의 제자인 시미즈 다카시에게 조소를 배웠다. 일본 공모전에서 잇달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낼 즈음인 59년 귀국했으나 고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추상 조소(彫塑)가 주류를 이뤘던 당시 한국의 조소계는 구상 조소인 그의 독창적 작품을 주목하기보다는 장식이나 기념비 정도로 여겼던 것.

내성적이었던 작가는 고혈압 수전증 우울증에 시달렸고 급기야 1973년,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오후 6시 거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작업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흙을 사용한 테라코타와 종이에 옻칠을 한 건칠(乾漆)이라는 독창적 소재로 인물이나 동물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한국 조각의 리얼리즘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88년 고인의 15주기를 맞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본격적인 회고전이 개최됐으며 지난해 9월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30주기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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