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찾아서]포스터…영화분위기와 다른 파격포즈 화제

  • 입력 2004년 4월 7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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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포스터를 이용해 이슈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풍자하는 ‘패러디 포스터’가 유행이다. 옛날 같으면 선뜻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옛날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이미지를 고려한 디자인보다는 그저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과 이러저러해서 대단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원색적인 색깔에 선전 문구를 빼곡히 적고, 배우들의 얼굴을 커다랗게 배치해 놓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촬영 현장에서 찍은 스틸 사진을 이용해 포스터를 제작했지만 요즘은 포스터 한 장을 위해 촬영 장소를 따로 빌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더 좋은 배경을 위해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영화촬영 못지않게 사전준비도 철저히 하고 배우들도 포스터 찍을 시간은 따로 내줄 뿐 아니라 극중 인물을 한 컷에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보여준다.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영화 포스터 사진을 찍고, 거꾸로 포스터 사진을 찍어서 유명해지기도 한다. 또 유명 화가가 그린 포스터도 등장했다.

단순히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전달의 역할을 넘어 영화 포스터도 하나의 작품으로 대우받게 된 것이다.

1984년 촬영현장에서 찍은 스틸 사진을 이것저것 조합해서 만든 포스터밖에 없던 시절에 배창호 감독, 이미숙 주연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가 이색적인 티저 포스터를 선보였다.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사진을 찍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사진작가가 찍은 첫 번째 영화 포스터였을 것이다.

친언니와 헤어져 고생하는 극중 ‘오목’ 역할과는 정반대로 패셔너블한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이미숙의 모습은 영화 포스터라기보다는 차라리 패션지 화보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영화 포스터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포스터에 노란색을 쓰면 ‘황된다’거나, 검은색을 쓰면 초상집 된다고 해서 배우가 선글라스를 쓴 사진을 사용하면 흥행이 안 된다는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흥행도 잘 됐고, 배우 이미숙에게는 대종상, 영화평론가상, 백상예술대상 등 주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관객들에게 포스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영화 ‘결혼이야기’도 스틸 사진이 아니라 포스터용 사진을 찍어 포스터를 만들었다. 최민수와 심혜진이 각각 킴 베이신저와 리처드 기어의 사진을 뒤쪽에 감추고 있는 장면(남녀의 솔직한 속마음의 표현이었다!)으로, 그 전의 포스터 형식에서 많은 변화를 꾀한 작품이었다.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은행나무 침대’는 화가가 그린 티저 포스터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안성기의 얼굴로 전체를 가득 채운 사진작가 오형근씨의 ‘영원한 제국’이나 빈 의자 가득 모아놓은 벌판을 배경으로 머리카락이 얼굴을 거의 가린 심은하와 이정재의 옆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강영호씨의 ‘인터뷰’ 같은 영화 포스터도 색다른 시도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돌고 도는 것인지 간혹 ‘품행제로’, ‘해적, 디스코왕 되다’처럼 촌스러워 보이는 옛 스타일을 빌린 포스터들이 복고풍이라는 이름으로 눈길을 끌기도 한다.

십년쯤 뒤에는 어떨까? 옛날 포스터가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듯이 지금의 포스터도 촌스러워 보이진 않을까? 그래서 요즘의 형식을 빌려 만든 포스터가 특이하다고 눈길을 끌지도 모르는 일이다.

채윤희 올댓시네마대표·uni1107@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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