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오명철/시대 유행과 善惡果

  • 입력 2004년 3월 23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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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상에 시대사조가 있다면 문화와 예술에는 시대 유행이 있다. 특히 한 시기 젊은이들의 문화 예술과 정치적 쏠림 현상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선악과’를 맺는다. 따라서 한 시대 젊은이들의 문화와 정치적 지향을 살펴보면 그 사회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1960년대는 문학청년, 즉 ‘문청(文靑)의 연대’였다. 젊은이들의 관심은 시와 소설, 그리고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었다. 대학생들은 펜과 원고지 ‘사상계’를 끼고 다녔고 김지하와 김승옥이 그들의 문화적 영웅이었다. 정치권에서는 ‘3김시대’가 잉태되고 있었고 4·19세대와 63세대가 태동했다. ‘3김’은 이후 30여년간 한국 정치를 주물렀고 60년대 젊은이들 또한 그 그늘에서 동고동락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3김과 함께 정치권에서 용도 폐기되고 있다. 정치에서 ‘문자세대’의 종언이다.

1970년대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靑年)문화의 연대’였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운 시기였다. ‘아침이슬’의 김민기와 양희은이 젊은이들의 우상이었고 최인호와 한수산이 세련된 감각과 필치로 이들의 고뇌와 감수성을 대변했다. 정치적으로는 위수령세대와 민청학련세대가 배출됐다. 낭만적 운동권이었던 이들은 곧 골수운동권 후배들에게 추월당했다. 대신 이들은 뮤지컬 오페라 등 우리 문화의 가장 구매력 있는 소비층으로 등장했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살고 싶다며 정치권 진출을 고사한 강금실이 이 세대가 배출한 ‘스타’다.

1980년대는 두말할 것 없이 ‘운동권의 연대’였다. 광주의 유혈 진압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돌과 화염병을 들고 운동권에 가담했다. 훗날 대척점에 서게 된 황석영과 이문열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지향을 담아 냈다. 꽃다운 목숨을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친 박종철과 이한열이 이 시대의 ‘분신’이고 정치권의 386세대가 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당선시켜 정치적 목표를 10년 이상 앞당겨 대리 쟁취한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직접 정치주도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1990년대는 영상세대, 즉 ‘영청(映靑)의 연대’였다. 젊은이들은 열악한 영화판에서 소주잔을 나누며 한국 영화의 현실과 미래를 논했다. 이들의 재산목록 1호는 16mm 카메라와 PC였고 임권택이 그들의 존경 받는 스승이었다. 당시 충무로에서 인고의 나날을 보낸 강우석 강제규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이 최근 괄목할 만한 업적을 냈다. 1000만 관객 돌파와 자국 영화의 국내시장 점유율 50% 달성이라는 신화를 창출한 한국 영화는 이제 세계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2000년대 젊은이들은 ‘월드컵’과 ‘붉은악마’, ‘반미(反美)’와 ‘촛불시위’라는 정서적 연대를 경험했다. 춤과 노래, 컴퓨터와 외국어에 능하고 ‘얼짱’ ‘몸짱’을 동경하는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와 다기능 휴대전화로 소통(疏通)한다. 그들의 성취가 드러나게 될 시점과 그 양상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렇듯 10년 주기로 대한민국에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신인류(新人類)’가 등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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