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 무엇이 우선인가…탁석산 vs 김동성교수

  • 입력 2004년 2월 23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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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국가’라는 패러다임 아래 국가(state)와 민족(nation)을 동일시해온 한국사회에서 최근 이를 분리해 바라보아야 한다는 비판적 사고가 대두하고 있다. 민족과 국가를 분리하는가, 통합하는가에 따라 남북통일과 세계화의 해법이 사뭇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향후 논지의 전개과정이 주목된다.》

● 근대민족국가 못 세워 민족성과 국가성 경쟁

최근의 민족-국가 분리주의자는 중견철학자 탁석산씨.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에서 1990년대 들어 북한이 체제붕괴 위기를 맞아 ‘민족국가 수립’이 현실문제로 다가오자 민족통일 지상론이 다시 고개를 들며 국가와 민족이 갈등 대립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민족과 국가를 구별해 바라보는 문제의식은 90년대 말 통일논의를 둘러싸고 정치학계에서 태동했다.

중앙대 김동성 교수(정치외교학)는 1997년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에서 “통일을 둘러싼 남한 내 시각이 민족 우선주의 패러다임과 국가 우선주의 패러다임으로 나뉘어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근대적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광복과 분단을 맞아 ‘민족성’과 ‘국가성’이 상호 경쟁적 상태에 놓이게 돼 이 같은 분열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민족우선주의자들은 분단문제가 체제모순의 원인이기 때문에 분단해소 즉 통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국가우선주의자들의 통일방안은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넓혀 체제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것. 통일 이후의 체제에 대해서도 민족우선주의자들은 양 체제 모순을 동시에 극복한 새로운 체제의 성립을 꿈꾸지만, 국가우선주의자들은 현재 남한 국가체제로의 흡수통일을 상정한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최완규 교수는 “도식화의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민족우선 패러다임 지지자들은 햇볕=반미=민주화세력=진보로 연결되고, 국가우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보=친미=근대화세력=보수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민족과 국가는 대체재, 보완재?

탁씨는 한국사회에서 ‘민족’은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처럼 국가건설이 불가능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로서, 국가와 민족은 양자가 서로를 대체하는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견해에 대해 “국가유지에는 합리적 이성으로 만들어지는 정책적 요소 못지않게 애국심, 민족적 열정 같은 정서적 요소도 중요하다”며 이를 상호보완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민족주의 이상팽창의 원인을 세계화의 확산에서 찾는다. 민족주의의 이상팽창은 세계화의 전개로 인해 일상에서 개인과 세계가 바로 부닥치면서 국가의 역할과 권위가 상실되고 있기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결론도 다르다. 탁씨는 “국가적 목표를, 환상에 젖은 민족국가 수립에서 보다 현실적인 시민국가 수립으로 전환하자”고 국가주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반면 김 교수는 “근대화의 완성은 일단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에 있다”면서 “국가주의 패러다임과 민족주의 패러다임의 통합적 모색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 동시 입장했던 남북 선수단 대표(왼쪽)가 앞세웠던 한반도기와 2002년 촛불시위현장에서 불태워지는 성조기. 민족주의 과열현상을 바라보며 학계 일부에서는 민족과 국가를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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