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 콘서트…청중 열광시킨 긴호흡의 쇼팽연주

  • 입력 2004년 2월 2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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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밤 10시경.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이 끝난 로비는 사인회를 기다리는 소녀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디가 줄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었다.

갑자기 “와아!” 하는 환성이 터졌다. 두 시간 반에 걸친 연주를 마친 임동혁(20)이 모습을 드러냈다. 디지털카메라로 무장한 군중 사이에서 수백개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주최사인 크레디아의 관계자는 “2600여명의 관객 중 3분의 2 정도는 사인회 대열에 선 것 같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젊은 거장은 팬들의 열광 속에서 행복해보였다. 팬 사인회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10대 여학생층이 절반 이상이었던 이날의 청중이 ‘스타’에게 무조건적 환호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연주의 내용이 그토록 범상치 않은 것이었을까.

연주의 전반부는 임동혁 자신이 “가장 공감한다”고 밝힌 쇼팽 작품들로 채워졌다.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9에서부터 그는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보였다. 그가 연주하는 쇼팽은 그 흐름에 있어서 다소 특이했다. 그는 악절(樂節·멜로디의 흐름을 끊는 단위) 구분을 다른 연주자보다 훨씬 길게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눌러주듯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부분을 그가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잠시 뒤 더 긴 흐름으로 시간을 구분해가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음을 알게 됐다. 손가락마다의 터치(打鍵)가 알알이 고르고, 페달 사용이 지극히 정교했다.

후반부의 연주곡들은 전반부의 쇼팽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따로 전시관을 개설해서’ 전시하듯 한 프로그램이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 D.664에서 그는 설탕과도 같이 달콤한 터치를 한껏 자랑했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7번은 피아노의 ‘타악기적’ 성격이 극한까지 부각되는 작품이다. 51kg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는 어떤 거구(巨軀)의 연주자 못지않았고, 최고의 포르티시모에서조차 각 음표의 윤곽이 또렷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팬들은 일찌감치 환호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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