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 키우기]<10>엄마노릇 익을만도 한데…

  • 입력 2004년 2월 8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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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아들 취학 통지서가 나왔다.

12년 전 첫 아이 취학 통지서를 받았을 때다. 드디어 학부모가 된다는 벅찬 감격과 가슴 설렘으로 콧잔등이 찡했었다. 그로부터 네번째 취학 통지서를 받고 보니 그런 감동은 없으나 ‘이제 저 개구쟁이 녀석도 드디어 경쟁 대열에 끼어드는구나’ 싶어 아이가 측은하기도 하고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선생님 말씀은 귀담아 들을 수 있을지, 알림장은 제대로 써올 수 있을지, 학교 오가는 길에 친구들과 싸우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딸아이들 때는 하지 않았던 걱정을 하는 건 늦둥이라는 애잔함 때문일까….

아들은 요즘 어린이 집에서 받아쓰기 연습을 한다. 80점에서 100점까지 다양한 점수가 기록된 아들의 받아쓰기 공책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 꼬물꼬물한 손으로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를 놓치지 않고 용케도 썼구나 싶으니 아들이 기특하게 여겨진다.

어제는 아들이 잠자리에 들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엄마, 나 일기 써 가야 돼.”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아이를 구박하며 둘이 마주앉았는데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가 쓰는 걸 보니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틀려 이건 이렇게 고쳐 쓰자고 했더니 막무가내로 자신의 고집을 내세웠다. 둘이서 실랑이를 벌이다 ‘그래, 내 눈높이가 아닌 네 눈높이에 맞추자’ 싶어 뒤로 물러나 앉았는데 아들은 기회다 싶은지 후다닥 써서 유치원 가방에 공책을 넣는다. 순간 그대로 두어야 할지 잠시 갈등하다 아이가 제대로 쓸 수 있게 가르쳐주는 게 엄마 된 도리인 것 같아 공책을 꺼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 녀석의 눈높이 일기는 도저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수준이다. 딸들의 경우 엄마가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하면 고집을 부리다가도 엄마가 보지 않으면 슬그머니 고쳐놓는데 아들 녀석은 초지일관 자신의 뜻대로 써 나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아들에게 “이게 뭐냐”고 소리치니 그때까지 옆에서 말없이 책만 보고 있던 남편이 나선다.

“준비도 시키지 않고 있다 갑자기 못한다고 혼내면 어떡해.”

그런 남편에게 “이걸 보고 이야기 하라”며 공책을 넘기고는 방에 들어가 누워 있으니 아들과 남편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자상하게 이것저것 잘못 쓴 부분을 짚어준다.

오늘 아침 아들은 밥을 먹다 말고 어젯밤에 고쳐 쓴 일기를 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공책을 꺼내 보는데 칭찬해 주어야 할지 야단을 쳐야 할지 복잡한 마음이 되고 만다.

남편은 아들이 쓴 일기에 원고지를 교정하듯이 교정해 놓은 게 아닌가. 찢어버리고 다시 깨끗하게 써가라고 할까 생각하다 남편의 방식이 정답인 것 같아 그대로 보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엄마, 선생님이 일기 재미있게 썼다고 웃었어.”

다행인 것은 남편이 내일부터 아들과 일기 쓰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다. 일기 쓰기 전 아이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아이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겠다니 기대가 크다. 넷씩이나 길러도 시행착오의 연속이니 제대로 된 엄마노릇이 힘들기는 힘든가 보다.

조옥남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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