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영혼의 순례자…1883년 칼릴 지브란 출생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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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보고 싶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하고, 산 정상을 보고 싶다면 구름 위로 올라가야 하지만, 진정 구름을 알고자 한다면 눈을 감고 생각하라.”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그는 시인이자 화가이며 철학자였다. 구도자였다.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 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었던 20세기의 성자(聖者)였다.

18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나 12세 때 미국 보스턴으로 옮겨온 지브란은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았다.

아랍과 서구(西歐), 레바논의 거룩한 삼나무 숲과 아메리카의 마천루 숲, 고대 페니키아 예언자의 세계와 냉혈로 가득 찬 20세기의 문명세계.

그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은 뉴욕에 살면서, ‘증오는 넘치고 마음의 여유는 없는’ 세상에 영혼의 등불을 밝히고자 했다.

지브란은 결혼에 대해 말한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다….”

그의 시는 울림이며 노래이다. 빽빽이 들어선 메타포와 아포리즘의 숲에선 삼나무의 맑은 향이 풍겨 나온다.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의 냄새가 뼛속까지 우러나온다. 현대의 시계(時計)는 고대로 퇴화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현실을 ‘영원의 정치학’으로 회귀시킨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의 초기작들은 끝없는 종족의 추방과 레지스탕스로 점철되어온 조국의 가파른 역사를 뜨겁게 짊어지고 있다.

그는 돈과 권력에 미친 교회와 정부를 격렬히 비판하였고 불의(不義)와 극단주의, 제도화된 폭력을 배격했다. 아랍어로 씌어진 ‘반항하는 영혼’은 금서로 지정돼 베이루트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그의 조국의 상징인 삼나무. ‘땅이 하늘에 대고 쓰는 시(詩)’라는 그 삼나무의 영혼을 갖고 태어난 지브란. 그 불멸의 영혼은 ‘예언자’의 마지막 시구에서 이렇게 반짝인다.

“잠깐, 바람 위에 일순의 휴식이 오며,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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