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신춘문예 2관왕 허혜란씨

  • 입력 2004년 1월 2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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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신문에 실린 제 소설을 읽는 걸 봤어요. 신춘문예 당선이 그제야 실감 나더군요."

올해 신춘문예 '2관왕'이 된 허혜란(許惠蘭·34)씨. 허씨는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각각 다른 작품을 출품해 모두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94년 전주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허씨가 문학에 뜻을 두게 된 계기는 96~98년 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머문 경험이었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중국, 불가리아, 터키 등을 혼자 여행했어요. 한국 바깥에 있지만 한 뿌리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이런 것들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그에게 '소설을 쓰겠다'는 열정과 평생의 반려자를 함께 선사했다. 그곳에서 동료 한국어 교사였던 남편(34)을 만났고, 귀국해 결혼했다. 결혼 후 습작을 계속하던 허씨는 아들이 태어난 지 36개월이 됐을 때, 02학번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첫 신춘문예 응모에서 고배를 마신 뒤 올해는 창작에 기를 쓰고 매달렸다. '제대로 준비했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고쳐 쓰고 또 고쳐 썼다. 언더그라운드 밴드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남편이 손에 '주부습진'이 생길 정도로 살림을 거들어 주었고, 아이는 엄마 대신 동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아야 했다.

'아귀는 입술 끝에 독이 있다'로 시작하는 '2004 동아신춘문예' 당선작 단편 '독(毒)'은 혼란스러운 삶을 결국 딛고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어떤 소설을 써야 하나 고민하던 가운데, 내게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자성을 하게 됐어요. 몇 년 전부터 품고 있던 그 첫 문장에 의지해서 계속 나아갔죠. 약간의 독은 우리에게 유용합니다. 암울한 삶 속에서는 독이 폭력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허씨는 앞으로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1961년 시조시인 이근배씨(64)가 조선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동시 당선됐고, 2002년 권정현씨(34)가 조선일보 충청일보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선례가 있다.

디지털뉴스팀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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