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반지의 제왕'의 새로운 철학 버전

입력 2003-12-12 14:50수정 2009-09-28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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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반지의 제왕 읽기/그레고리 베스헴 외 지음 최연순 옮김/380쪽 1만3000원 이룸

피터 잭슨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2001년부터 매년 한 편씩 발표하고 있는 영화 '반지의 제왕'. 1, 2편 영화는 국내에서만 총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이 보았지만, J R R 톨킨의 원작 소설 '반지의 제왕' 마니아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다. 소설의 '심오함'에 비한다면 잭슨의 영화는 '멍청이들을 위한 반지의 제왕'일 뿐이라는 것이다.

톨킨 마니아들이 인터넷상에서 영화에 대해 분노와 야유를 쏟아내는 사이, 15명의 미국 철학자와 2명의 영문학자가 모여 다른 버전의 '반지의 제왕'을 기획했다. 이들은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을 위한 반지의 제왕'을 필요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학자들이 내놓은 '새로운 버전의 반지의 제왕'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탄생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살육과 탐욕을 목격한 뒤 서구인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전복되던 때였다. 사르트르,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며 좌절하거나 신에게 귀의하는 동안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톨킨은 그의 박식한 문헌학과 언어학적 지식을 동원해 1944~1955년 '반지의 제왕'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건설했다.

'진리의 조명과 선한 도덕성의 장려'라는 톨킨의 저술 의도가 실제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실현됐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약 50년 동안 톨킨의 이 판타지 소설은 전 세계에서 50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17인의 학자들은 '멍청한 이들을 위한 반지의 제왕'에 맞서 톨킨이 전해주고자 했던 진지한 메시지를 읽어나간다.

▽도덕적 삶의 선택

절대반지를 소유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끝까지 반지를 거부하고 프로도를 보위했던 충성스런 호빗족 샘이나 요정 갈라드리엘처럼 도덕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도덕적인 사람은 사랑, 우정, 개인적 성취감 없는 권력이 구원받을 수 없는 불행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삶이란 나의 능력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에릭 카츠·뉴저지 기술연구소 교수·철학)

▽절대반지는 과학기술의 위협을 상징

신기술은 절대반지와 같이 악인의 수중에 떨어져 악용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절대반지를 파괴하면서 끝을 맺을 수 있는 '반지의 제왕'과 달리 나노기술, 유전공학, 로봇공학 등의 과학기술은 전 세계로 퍼져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테오도르 쉬크·뮬렌버그 칼리지 교수·철학)

▽물신화를 극복하는 길

'반지의 제왕'에는 반지, 무기, 꽃, 책 등의 물질적 개념 뿐 아니라 우편체계, 전투, 회의, 날짜, 언어 등 비물질적 개념들이 모두 '사물(thing)'로 규정된다. 이 많은 사물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자기-지시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가 부여된다. 예컨대 노래란 '가사에 악곡을 붙인 예술행위'가 아니라 '축복의 땅에서 유래하며, 빛과 고상한 아름다움의 원천이 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를 통해 사물들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깨뜨리고자 하는 갈망, 즉 물신화된 사물을 넘어 초월을 향한 갈망을 이끌어낸다. (앨리슨 밀뱅크·버지니아대 교수·영문학)

▽행복의 문을 여는 6개의 열쇠

행복하게 사는 호빗족과 요정들을 보면 행복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것들이 주는 기쁨을 누릴 것, 근심을 털어버릴 것, 친밀한 인간관계를 가질 것, 선한 성품을 기를 것, 미(美)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창조할 것, 작은 일에서 늘 새로운 경이감을 느끼는 능력을 계발할 것. (그레고리 베스헴· 킹스 칼리지 교수·철학)

▽죽음은 축복이다

엘프족의 아름다운 공주인 아르웬은 '반지 원정대'를 돕는 전사인 아라곤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요정의 영생 대신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선택한다. 사랑 없는 영생은 아라곤과의 짧은 생애 동안 나누는 기쁨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기쁨을 배가시키고, 삶이 주는 고통과 좌절로부터 탈피하는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 (빌 데이비스· 코버난트 칼리지 교수·철학)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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