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지구의 끝 너머…1929년 남극점 상공 첫 비행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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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성의 마지막 극지, 남극(南極).

남극의 상공은 비행사들에겐 ‘죽음의 지뢰밭’이다.

대륙의 중심부는 해발 4000m의 고원을 이루고 있고 한월(寒月)에는 기온이 영하 70∼80도까지 수직 강하한다. 사면(斜面)을 깎아내리는 카타바풍(風)은 초속 50m를 넘나든다.

비행 중 최대 복병은 화이트아웃(whiteout). 흐린 날 햇빛의 난반사가 겹치면서 물체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다. 원근에 대한 균형감각을 앗아가 조종사에겐 치명적이다.

1929년 11월. 남극점 비행에 나선 미 해군장교 리처드 버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가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리는 ‘화이트아웃’에 갇히고 말았다. 버드는 지평선도 보이지 않는 은빛세계를 520km나 날아야 했고 시야를 빼앗긴 채 비행은 오로지 본능에 의존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버드는 아문센이 개썰매를 이끌고 99일 만에 주파했던 남극점까지 2600km를 하루 만에 돌파한다.

미 의회의 결의에 따라 소장으로 진급한 버드는 이후 여섯 차례에 걸친 미국의 남극탐험을 지휘하게 된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남극대륙을 영구히 미국의 영토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으며 남극기지를 ‘리틀 아메리카’라고 불렀다.

버드는 사후에 우연찮게도 ‘지구공동설(空洞說)’ 논쟁에 휘말렸다. 지구공동설은 지구 속이 텅 비어있으며 남극과 북극에 구멍이 뚫려있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지리학계의 이설(異說).

버드는 남극점 너머 3700km까지 비행했는데 이때 얼음이 얼지 않는 거대한 호수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군사기밀로 묶여있던 이 사실이 공개되자 버드가 말한 신천지가 바로 지구 속으로 통하는 입구라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그러나 학계에서 지구공동설은 남극에서 흔한 헤일로(halo·해무리)를 해로 착각하는 ‘헤일로 이펙트(effect)’의 한 사례로 폄하되고 있다. 헤일로 이펙트는 대상의 한 측면을 확대해석해 전체를 단정 짓는 인식의 오류를 가리킨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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