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쾅…1400도 열기 순식간에 확산…'화염병 체험'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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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가 방열복을 입고 직접 화염병의 위력을 체험했다. 화염병이 터지는 순간 1000도가 넘는 불길이 온 몸을 덮쳐 타올랐고 방패 주위의 고무가 순식간에 녹아 내렸다. 보통 시너는 휘발성이 강해 불길이 오래가지 않지만 화염병에는 설탕 성분이 들어 있어 불길이 물체에 달라붙어 오래 타고 끄기도 어렵다. 이승재 기자

취재기자가 방열복을 입고 직접 화염병의 위력을 체험했다. 화염병이 터지는 순간 1000도가 넘는 불길이 온 몸을 덮쳐 타올랐고 방패 주위의 고무가 순식간에 녹아 내렸다. 보통 시너는 휘발성이 강해 불길이 오래가지 않지만 화염병에는 설탕 성분이 들어 있어 불길이 물체에 달라붙어 오래 타고 끄기도 어렵다. 이승재 기자

9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1년 6개월여 만에 서울 도심에 나타난 화염병.

서울에서 화염병 시위가 벌어진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며 서울 도심에서 수백여개의 화염병이 던져진 것은 1997년 이후 6년 만이다.

역사 속에 잊혀졌는가 싶었던 화염병이지만 연말 잇따라 예정된 대규모 시위에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과거 시위 때마다 반드시 따라붙었던 화염병은 과연 얼마만한 위력이 있을까?

서울 종로소방서(서장 황순철)와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의 협조를 얻어 직접 화염병을 맞아봤다.

취재기자가 입은 방열복은 1000도까지 견딜 수 있는 특수복. 장갑과 신발, 머리와 안면 전체를 가리는 모자 등도 방열 처리된 것이며 알루미늄 방패도 사용했다. 화염병은 9일 시위 현장에서 압수된 실제 화염병을 사용했다.

●검은 연기로 시계 제로

방패에 화염병이 닿는 순간 손에 작은 베개 크기의 돌덩어리가 부닥치는 듯한 육중한 느낌이 전달됐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병이 깨지며 불붙은 시너가 마치 끓는 기름처럼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방패를 타고 넘어 온 불길은 팔, 다리에 달라붙어 계속 타올랐다. 장갑 낀 손으로 꺼보려고 허우적댔으나 불길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방열복에 불길이 닿자 채 몇 십초가 지나기도 전에 옷 안으로 뜨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불길 온도가 약 1300∼1400도까지 올라간다는 설명.

시너가 타면서 내뿜는 검은 연기로 시계는 제로 상태. 주변에 소화기를 준비한 소방대원이 있었지만 불길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으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소방대원을 찾을 수도 없는 다급한 상황이 연출됐다.

더욱이 바닥에는 이미 다른 화염병에서 터진 불길이 번지고 있어 뒹굴며 불을 끄기도 어려웠다.

경민대 소방과학과 이창우 교수는 “일반적으로 화염병에 사용되는 시너의 인화점은 불과 21도 미만”이라며 “방열복을 입지 않은 채 불붙은 시너를 뒤집어썼을 경우 즉시 불을 꺼도 피부와 신경조직이 손상되는 중화상(3도 화상 이상)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시위 현장에서 압수된 화염병에 설탕이 첨가됐다는 점. 시너는 휘발성이 강해 불이 붙더라도 1∼2분이면 꺼지지만 설탕을 섞으면 물체에 불길이 달라붙어 더 오래 타게된다. 이 때문에 화염병은 ‘인마 살상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 시너는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바닥에 깔린 화염병 불을 물로 끄는 것은 화재를 더욱 크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 교수는 “물로 불을 끄면 물위에 불이 떠다니며 더욱 번질 위험이 있다”며 “옷에 불이 붙었을 경우 담요 등으로 덮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화염병은 과거 시위에 자주 등장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탱크를 막는 데까지 사용된 일종의 폭탄”이라며 “엄연히 간이소이 수류탄으로 분류된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라고 말했다.

●사선에서

9일 화염병 시위에서 한 시위진압 대원은 시너의 불길이 바지 안으로 스며들어 부상했다.

쇠파이프와 돌, 화염병이 난무하는 상황이라 소화에 시간이 걸렸던 것. 다행히 화상 자체는 경미했지만 시위로 인해 시간이 더 지체됐다면 큰 부상이 될 뻔했다.

보통 의경이나 전경대원들은 훈련 시 절대로 화염병을 방패로 막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머리 위로 화염병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방패로 막게 되는데 그럴 경우 불길이 방패를 타고 온몸으로 쏟아지기 때문.

특히 진압복은 방열처리가 돼있지만 얼굴과 손 부분은 불길을 막을 방법이 없는 데다 옷 틈새를 통해 안으로 불이 스며들게 된다. 또 일반 옷과 달리 벗기가 어렵고 충격 완화를 위해 옷 내부에 넣은 대나무가 불에 타기 쉬워 피해는 더 커진다.

부대라는 특성도 위험성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다. 개별행동이 가능한 시위대와는 달리 밀집대형을 이루고 있어 대피가 쉽지 않기 때문. 불길이 상하로 번지기 때문에 반드시 좌우로 화염병을 피하도록 가르치지만 그나마 두어 발자국 이동에 불과한 데다 좁은 공간에서 화염병이 날아올 경우 고스란히 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기동단 백승언 제1 중대장은 “부대원 몸에 불이 붙을 경우 최우선적으로 끄도록 하지만 시위가 거세지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동시에 난무하는 상황에서 차분한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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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이란?

화염병(火焰甁·frangible grenade)은 유리병 속에 소이제(燒夷劑·태우는 물질)를 담은 일종의 간이소이 수류탄. 몰로토프 폭탄(Molotov cocktail)이라고도 불린다.

1939년 일본군과 몽골-소련군이 만주와 몽골 국경에서 충돌한 노몬한 사건 때 일본군이 소련군의 가솔린 엔진 전차에 화염병을 투척해 전차를 불태우는데 주로 이용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공산당 등 도시 게릴라들이 주로 폭동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5, 6공 시절 매년 평균 1000여회, 30여 만개의 화염병이 시위현장에서 쓰였다. 시위 자체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만큼 화염병 처벌도 엄했다.

한동안 뜸했다가 다시 등장한 화염병에 대해 사법부는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신영철 부장판사)는 2001년 1월 화염병을 던지며 파출소를 습격했다가 올 7월 구속 기소된 강모씨에 대해 16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 모 지역 철거대책위원장이던 강씨는 당시 집회시간 경과를 이유로 경찰이 참석자를 강제 해산시키고 일부를 연행하자 학생들과 함께 심야에 화염병을 던지며 파출소를 습격한 혐의다.

또 검찰은 9일 시위에서 화염병을 차로 실어 나른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 김모씨(37) 등 50여명에 대해 1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앞으로 각종 시위에서 사람의 신체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도구를 소지하거나 사용할 경우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화염병을 사용해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며 화염병을 제조, 보관, 운반, 소지한 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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