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5년 X선 발견

  • 입력 2003년 11월 7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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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나 탐험가의 발견이 언제나 인류의 축복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빛’ X선의 발견은 분명 인류의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 X선이 스스로의 과학적 업적과 평가를 수줍어했던 뢴트겐에 의해 발견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을 때 인체의 조직을 투시할 수 있는 ‘이상한 빛’은 그 가공할 상업적 가능성 때문에 주위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그는 X선에 대한 특허출원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 이유는 아주 소박하고 정직했다. X선이란 태고 때부터 있었고 다만 자신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발견했을 뿐인데 이를 독점할 수는 없다는 것. X선에 빗장을 잠그는 것은 자연을 훔치는 것과 진배없었다.

X선이 발견과 동시에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실용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X선만큼 세상을 흥분시킨 과학적 발견은 일찍이 없었다. 각국의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했다.

X선이 발견되자 그 중요성을 재빠르게 감지한 것은 의학자들이었다. 채 몇 주일도 지나지 않아 의사들은 X선으로 부러진 뼈를 촬영하기 시작했고 몸속에 박힌 탄환이나 금속을 찾아냈다. X선의 발견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과학사가들은 X선의 발견이 20세기 문명의 첫 단추를 달았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과학사는 1895년을 20세기 과학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X선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이어진다.

X선은 뢴트겐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에 의해 관찰됐다.

크룩스는 음극선 주변에서 발생한 X선 때문에 사진 건판들이 못쓰게 되는 일이 많았으나 이유를 따져보지 않았다. 레나르트는 방전관에서 일어나는 발광현상을 직접 목격하고도 무심히 지나쳤다.

러시아의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창조성은 예술가나 과학자가 경험하는 현실 속의 특별한 ‘온도’의 문제”라고 했던가. 그 특별한 온도에 반응한 것은 오직 뢴트겐뿐이었다. 그의 순수함이 X선을 투시했던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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