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북하우스’에서 만난 작가 김승영은 기억공간을 형상화한 자신의 작품 ‘기억의 방 Ⅱ’에 대해 설명하며 “계단이라든가 건물의 본래 구조를 자연스럽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은 헤이리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자연을 원래대로 받아들인 헤이리에서는 건물을 짓기 위해 산을 깎아내지 않았다. 이곳에선 갈대를 흔드는 가을바람이 도자기로 만든 풍경(임옥상·‘평화-바람은 소리다’)의 청아한 울림을 싣고 나른다. 천천히 늪 주위를 걷다보면 안규철의 ‘지울 수 없는 60개의 단어’를 만난다. 그는 보행자 도로의 블록에 ‘안부’ ‘첫사랑’ ‘인연’ 등 60개의 단어를 산발적으로 새겨 넣었다.
곳곳에 철골 뼈대가 드러난 건물이 흩어져 있어 첫인상이 말쑥하진 않다. 그러나 황량한 건물 가운데서 만나는 예술작품들은 갤러리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페스티벌을 찾은 구정애씨(25·경기 고양시 일산구)는 “처음 공사장 같은 풍경을 보고 당황스러웠지만 미완성된 건물에 놓인 작품들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헤이리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서는 매일 오후 2시, 4시 갈대광장에서 출발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된다. 15만평이 넘는 넓은 공간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작품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다녀야 하므로 따뜻한 옷, 편안한 신발은 필수. 입장료는 없다. www.heyri.net, 031-946-8551∼3
▽헤이리란?▽
‘헤이리 아트밸리’(헤이리)는 다양한 문화 장르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문화예술마을을 지향한다. 1997년 김언호 한길사 대표 등 출판인들이 인근에 조성 중인 파주출판단지와 연계한 ‘책마을’을 구상한 데서 시작됐으며 그 진행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면서 ‘예술마을’로 개념이 확장됐다.
현재 작가 미술가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헤이리에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예술 공간을 짓고 있다. 전체 공정률은 약 50%.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지역에 전해져 오는 전래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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