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는 지금… 자연이라는 이름의 갤러리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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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늪지를 따라 설치된 목재 산책로의 난간에 매달린 정현의 작품 ‘소리’.  -사진제공 헤이리페스티벌 사무국
갈대늪지를 따라 설치된 목재 산책로의 난간에 매달린 정현의 작품 ‘소리’. -사진제공 헤이리페스티벌 사무국
지금 헤이리는 문화와 예술,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거대한 실험의 장이자 사색의 공간이다. 19일까지 경기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서 열리는 ‘헤이리 페스티벌 2003’. 신축 중인 건물 자체가 작품이고 또 그 안에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주말에는 영화 시사회와 음악 공연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다. ‘헤이리 건축전’ ‘건축 속의 미술’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각 작품의 담당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줘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방송인 황인용의 ‘카메라타 음악실’, 소설가 정한숙을 기리는 ‘정한숙 기념홀’, 소설가 윤후명의 ‘후명원 만묘루’ 등에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숨어 있다.

‘한길 북하우스’에서 만난 작가 김승영은 기억공간을 형상화한 자신의 작품 ‘기억의 방 Ⅱ’에 대해 설명하며 “계단이라든가 건물의 본래 구조를 자연스럽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은 헤이리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자연을 원래대로 받아들인 헤이리에서는 건물을 짓기 위해 산을 깎아내지 않았다. 이곳에선 갈대를 흔드는 가을바람이 도자기로 만든 풍경(임옥상·‘평화-바람은 소리다’)의 청아한 울림을 싣고 나른다. 천천히 늪 주위를 걷다보면 안규철의 ‘지울 수 없는 60개의 단어’를 만난다. 그는 보행자 도로의 블록에 ‘안부’ ‘첫사랑’ ‘인연’ 등 60개의 단어를 산발적으로 새겨 넣었다.

곳곳에 철골 뼈대가 드러난 건물이 흩어져 있어 첫인상이 말쑥하진 않다. 그러나 황량한 건물 가운데서 만나는 예술작품들은 갤러리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페스티벌을 찾은 구정애씨(25·경기 고양시 일산구)는 “처음 공사장 같은 풍경을 보고 당황스러웠지만 미완성된 건물에 놓인 작품들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헤이리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서는 매일 오후 2시, 4시 갈대광장에서 출발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된다. 15만평이 넘는 넓은 공간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작품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다녀야 하므로 따뜻한 옷, 편안한 신발은 필수. 입장료는 없다. www.heyri.net, 031-946-8551∼3

▽헤이리란?▽

‘헤이리 아트밸리’(헤이리)는 다양한 문화 장르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문화예술마을을 지향한다. 1997년 김언호 한길사 대표 등 출판인들이 인근에 조성 중인 파주출판단지와 연계한 ‘책마을’을 구상한 데서 시작됐으며 그 진행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면서 ‘예술마을’로 개념이 확장됐다.

현재 작가 미술가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헤이리에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예술 공간을 짓고 있다. 전체 공정률은 약 50%.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지역에 전해져 오는 전래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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