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직접 만들고 팔고 사고…경제란? 아하, 그렇구나

  • 입력 2003년 9월 23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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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진열 ▼홍보도 직접
예쁘게 진열
▼홍보도 직접
《“세상에서 한 벌뿐인 티셔츠 사세요.” “10번째 손님은 가방 값을 30% 깎아주고 선착순 10명에게 10% 할인 혜택을 줍니다.” 20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구 라페스타 문화거리. 손님을 부르는 초등학생 ‘꼬마 사업가들’의 앳된 목소리가 넘쳐났다. 어린이들이 가상 기업을 만들고 상품을 거래하는 ‘어린이 경제특구’ 행사가 열린 것. 오전 내내 기업 부스를 꾸미고 홍보 아이디어를 짜느라 구슬땀을 흘린 아이들은 ‘청바지로 만든 가방’ ‘크레파스 그림을 넣은 맞춤 티셔츠’ ‘망고 녹차’ ‘과일 쿠키’ ‘젤리 팝콘’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고 실력 발휘에 나섰다.》

○ 경제야 놀자, 어린이 경제특구

이날 행사는 비영리 경제교육재단인 데카코리아가 고양시청의 도움을 얻어 마련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로 구성된 14개 팀 8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팀 중 12개 팀이 초등학생으로 짜여졌다. 하지만 철없는 아이들의 ‘소꿉놀이’는 아니다.

아이들은 8월부터 행사를 준비했다.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며 재능이 있는 친구를 팀에 끌어들여 기업을 만들었다. 재무 경영관리 홍보 상품개발 등 역할을 나눈 뒤 사업계획서를 짜고 시장조사도 했다.

"돈 벌었어요"
20일 경기 고양시 일산 어린이 경제특구의 한 부스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아 번 돈을 들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김미옥기자 salt@donga.com

“최고의 상품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기업이 되겠습니다.” “모두의 이익을 생각하겠습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라도’라는 생각으로 일하겠습니다.”

진열대에는 기업의 비전과 목표, 경영 원칙을 담은 ‘기업 사명 선언서’가 내걸렸다.

○ 난, 꼬마 사업가

“사업 아이템이 뻔하다고요? 두고 보세요. 시장조사를 미리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어요.”(고양시 정발초교 6학년 한지수)

지수는 친구 5명과 행사에 참가했다. 주력 제품은 ‘젤리가 들어간 팝콘’. 학교 친구에게 설문조사를 해 ‘팝콘에는 달콤한 과자가 어울린다. 그러나 과자 부스러기가 손에 묻는 것은 싫다’는 응답을 듣고 달콤하면서 손에 묻지 않는 젤리를 팝콘에 넣었다는 것.

“디지털카메라로 즉석 스티커 사진을 찍어주는 사업을 기획하고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프린터 등을 친구 아버지에게 빌려 투자 비용을 줄였어요. 그래도 복잡한 기계를 쓰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금을 날릴 것 같아 게임과 팝콘 판매 사업도 준비했죠.”

즉석 스티커 사업에만 매달려서는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 지수가 포트폴리오(위험분산)를 시도한 셈이다.

○ 아하, 시장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손님이 뜸해지자 아이들이 바빠졌다. 광고판을 들고 거리로 나서거나 행사장 구석에 마련된 대형TV 모양의 상자에 몰려가 즉석에서 ‘TV CF’ 형식의 홍보전을 펼쳤다.

“인형은 안 팔아요. 대신 빵을 사면 인형을 얻을 수 있는 ‘보물’이 나와요.”(서울 서강초교 5학년 한기운)

빵과 쿠키를 판매하는 ‘빵들의 반란’팀의 홍보 담당인 기운이는 경품을 마케팅에 이용했다. 게임을 벌여 할인 쿠폰을 주거나 선착순 또는 손님 수에 따라 값을 깎아주는 팀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 팔면서 ‘어린이 경제 특구’에서는 돈이 돌기 시작했다.

상품 거래는 자체 화폐인 ‘쿨(Cool)’을 통해 이뤄졌다. 주최측이 마련한 은행이 제시한 원화 대 ‘쿨’의 환율은 2 대 1. 2000원이 1000쿨이라는 원리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아이들은 물건 값 계산에 애를 먹었다.

○ 실패를 통해 배운다

“재료비를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했어요. 빵 굽는 연습을 하느라 재료비를 초과 지출해 엄마한테 돈을 급히 빌렸죠.”(고양시 낙민초교 6학년 신정원)

“티셔츠는 예쁜데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하지 못해 손님이 잘 찾지 않아요.”(고양시 문화초교 2학년 최예은)

행사는 다음달 25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한 주는 상품을 판매하고 다른 한 주는 판매 성과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식이다.

데카코리아 안승환 사장은 “요즘 20, 30대가 어릴 때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저축 국가였지만 지금은 청년 실업 등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며 “어릴 때 돈 모으는 것만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경제 원리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사 참가학생의 학부모 류재길씨(41)는 “물건을 왜 사는지 따지고 일기와 용돈 기입장을 기록하는 아들이 대견스럽다”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들이 의젓해졌다”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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